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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13. 2023

어느새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지인들을 만나 점심을 먹고 있던 금요일이었다. 가방에 얌전히 들앉아 있던 휴대폰이 울었다.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대니 '깽깽이풀 보내 줄게 주소 찍어봐.'라는 걸걸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어깨는 자연스럽게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야! 정말? 정말? 보이니? 내 어깨가 들썩거리는 거! 넌 왜 갑자기 어깨춤을 추게 만들고 그래!' 영천 사는 친구는 이것저것 있느냐고 물어보고는 알아서 보내 준다며 전화를 끊었다.          

 저녁부터 모자를 뜨기 시작한 일은 다음 날 오전까지 이어졌다. 노랑이를 떠서 써 보니 이쁘다. 그래서 초록이를 떴다. 두 살 터울의 두 여동생에게 자랑했더니. '언니 우리 그 모자 쓰고 못난이 사진 찍자‘라고 톡이 왔다. 그래서 또 노랑이를 떴다. 그러다 보니 당장 만들어야 하는 재능기부 파우치 만드는 일은 뒷전으로 밀렸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라 작업실로 들어갔다. 시간 나는 대로 조금씩 만들던 파우치 만들어만 놓고 지겨워진 나는 끈 끼우는 일은 다시 뒤로 미루며 작업실을 나왔다.

 마당에선 늘어진 오후 햇살이 유혹하고 있었다. 햇볕을 쏘이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문 앞에는 두 개의 택배 박스가 도착해 있었다.

 하나는 원주 친구가 보낸 커피와 손 편지가 들어 있었다. 이 친구는 가끔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커피나 직접 다린 쌍화탕을 보냈다. 늘 받기만 하니 이 원수를 언제 갚을지 기약이 없다.     

 또 하나는 영천 친구가 보낸 화초였다. 난 깽깽이풀부터 찾았다. 봄에 깽깽이풀을 구해 심었다가 죽였던 걸 기억해 준 친구의 마음 씀에 감사함이 마구마구 올라왔다. 여리디 여린 자태만큼 예민한 아이였다. 생육조건이 까다로워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그 아이를 데려다가 혹여 죽일까 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터라 더 반가웠다.

 그늘진 곳에 정성스럽게 심고 물을 주었다.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아이가 추운 겨울을 보내느라 몸살을 앓을까 봐 낙엽도 두껍게 덮어 주었다.

 일을 끝내고 일어나며 무심히 눈을 돌리던 눈동자가 급브레이크를 밟듯 멈췄다. 작은 호랑가시나무에 꽃이 피어 있었다. 쪼르르 앞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이내 환호하며 괴성을 질렀다.     

 

  3년 전, 오일장에서 데려와 심은 나무였다. 5월쯤에 잔가지가 너무 많아 가지 치기를 하다가 아까워서 무심히 꽂아 두고 잊고 있었다. 더군다나 뿌리를 내렸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모주는 아직 꽃 피울 생각도 없이 멀뚱멀뚱 서 있는데 그 아이가 아무도 모르게 꽃을 피웠으니 내 어찌 환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두 팔은 하늘을 향했고 어깨는 들썩거렸다. 그 아래에 있던 엉덩이가 씰룩거리며 발은 용수철을 튕기듯 튀어 올랐다.


 예쁜 모자가 세 개나 생겼고 좋아하는 블루마운틴 커피가 생겼고 간절하게 키우고 싶었던 깽깽이풀이 내게 왔다.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어린 호랑가시나무에 꽃이 피었다.

고개를 들어 먼 산에 눈을 던졌다. 그곳엔 감사한 일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마당을 돌아다니는 내 어깨는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깽깽이풀. #호랑가시나무꽃 #못난이인형 #못난이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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