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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10. 2023

맛있는 하루

 11월 15일  날짜로  지리산 남부능선 끝자락인  청학동에 있는 삼신봉은 입산이 금지된다. 산불방지를 위해 막아 놓았다가 긴 겨울을 보내고 내년 5월 1일에 풀린다. 그런 이유로 산행이 금지되기 전에 한번 더 다녀오려고 길을 나섰다.
길을 나서기 전, 삼신봉 갈 때 데려가 달라는 친구 말이 생각났다. 카톡으로 연락을 했더니 이내 달려왔다.
삼신봉 들머리에 도착해서 숲으로 들어섰다. 일주일 전 왔을 때 만해도 단풍이 제법 예뻤는데
그 사이 잎을 떨군 숲은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봄의 숲은 추운 겨울을 버티고 싱그러운 희망을 뿜어 내서 좋고 잎이 무성한 여름의 숲은 상쾌한 공기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서 좋고 가을 숲의 단풍은 색의 유희에 빠지게 해서 좋고 잎을 다 떨구고 몸뚱어리만 서 있는 겨울의 숲은 솔직해서 좋다.
 자연은 언제나 그곳에서 변함없이 다 내어 주고 품어 주니 좋다. 내가 자주 산을 찾는 이유다.

 

 함께 오르던 친구는 천천히 오르는데도 자꾸만 하품을 했다. 속도 메슥거리며 허전하다고 했다. 오랜만의 산행이어서 그랬는지 긴장을 했나 보다. 쉬엄쉬엄 좋지 않은 컨디션을 달래 가며 오르던 친구는 정상을 삼분의 이쯤 남겨 두고 산행을 포기했다.
혼자 천천히 내려갈 테니 정상까지 다녀오라는 친구를 뒤로 하고 나는 산행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빠르게 오르느라 감당하기 힘든 속도는 거친 숨을 계속 토해냈지만 혼자 내려가고 있는 친구를 생각하는 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자꾸 망설임의 생각이 뒷덜미를 때렸다. 같이 내려갔어야 했는데 굳이 정상을 왜 밟으려고 하는 건지. 이것도 헛된 욕심일 뿐인데, 그러면서도 발걸음은 뒤돌아 보지 못하고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정상에 도착하자 전화로 안부부터 확인했다. 등에 진 배낭은 내려놓지도 못한 채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돌아섰다.


  마음은 급한데 아래로 내딛는 발걸음은 조심스럽다. 무수히 쌓인 낙엽으로 인해 길의 상태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올라갈 때 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 미끄러지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위험한 낙엽길을 지나자 내 발걸음은 육상선수 ‘우샤인볼트’가 달리는 속도만큼이나 빨라졌다.
 다시 들머리에 거의 도착할 때쯤 친구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휴 하며 안도의 숨을 크게 내 쉬었다. 걱정했던 마음이 사라지자 다리의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고 싶어졌다.





 하산주는 진리라며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켰다. 맵싸한 땡고추가 콕콕 씹히는 파전과 밥알이 동동 떠 있는 동동주가 참 맛있다.
 산행을 하고 동동주를 마시는 우리의 시간도 맛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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