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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14. 2023

산골의 겨울밤





 몇 시쯤 되었을까? 싸르르한 한기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눈은 뜨지 않았지만 방안은 아직 어둠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기장판의 온도를 높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그마저도 귀찮아 몸을 잔뜩 웅크렸다.
잠시 후. 멀리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간간하게들려왔다.

 산골의 겨울밤은 유난히 길고도 추웠다. 달빛도 추위를 피해 구름이불을 덮었다.   오두막은 이미 어둠에 묻힌지 오래였고

안방엔 30촉 백열등만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다.  아랫목에는  두툼한 목화솜이불이 깔려 있다. 문풍지가 날카롭게 우는 밤, 저녁을 먹고 난 아이들은 하나, 둘 이불속으로 모여들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아랫목을 내어 주고 한 귀퉁이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다. 뜨개질을 하는 실은 실 공장에서 버려지는 것을 모아 머리에 이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보따리  장사에게서 산 자투리 실이었다. 그 실은 석 달 열흘 머리 한번 감지 않고 마을을 돌아다니던 미친년 머리카락 보다 더 엉켜 있는 뭉탱이 실이었다. 나는 뜨개질하는 엄마 옆에서 뭉탱이를 살살 구슬리며 한 올씩 뽑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은 굉장한 집중력과 인내를 요구했다. 한 올을 뽑아내어 바구니에 담았다. 또 한 올을 뽑아내어 먼저 나온 실과 묶었다. 그렇게 모아진 실은 나란히 펴 있는 네 개의 손가락에 감았다. 적당히 모아진 실을 빼내어 다시 동글동글하게 감았다.
그 실은 대바늘은 잡은 엄마의 손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몇 밤이 지나면 엄마의 손에서 놀던 실은 어느새 내 바지가 되어 있었고 동생들의 내복이 되어 있었다. 세상의 색이란 색은 모두 바지 속에 모여 아이들과 함께 산골의 겨울을 돌아다녔다. 무릎이 해지고  소매부리나 바지 부리가 나달나달 해 지기 시작하면 처마에 고드름도 나달나달 흘러내렸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는 멈출 생각이 없나 보다.
꼬끼오 새벽닭이 울어 재낀다. 5시 20분에 맞춰진 휴대폰은 어김없이 정확하다.
아랫마을로 감 깎는 일을 하러 가기로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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