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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16. 2023

이뻐지나님?

  산청의 요즘은 감 농가들이 깜을 따고 깎아 걸어 곶감 만드는 작업을 하느라 거리엔 말 그대로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감 농사를 짓지 않는 나의 손도 곶감 만드는 농가로 불려 갔다. 감을 깎는 동안은 휴대폰을 만질 수가 없다. 끼고 있는 장갑을 벗는 일도 번거롭고 일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감에 들어 있는 타닌 성분이 표면에 묻으면 끈적끈적해서 질 때마다 상그럽다.

잠깐 쉬는 시간을 이용해 전화기를 켜니 여기저기 빨간 숫자가 나부터 봐 달라며 툭툭 튀어나왔다. 내게는 빨간 숫자가 떠 있는 것을 바로바로 지워야 하는 조급증이 있다. 그래서 모든 앱의 알람 기능은 무음이다. 자주 이용하는 앱을 제외하고는 숫자도 뜨지 않게 해 놓았다.

먼저 밴드부터 열어 댓글을 읽고 카카오톡의 수다 소식도 보고 문자로 넘어갔다.

문자는 '이뻐지나'님이 보낸 의류 물품이 오후에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뻐지나 가 누구지? 난 옷을 직접 만들어 입어 의류를 주문한 적이 없는데? 궁금증은 사채 이자처럼 불어났지만 밖에 나와 있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감을 깎는 내내 이뻐지나 님이 머릿속에 들앉아 놀고 있었다.     

 작업자가 감을 깎는데 껍질을 받아내는 받이가 기계에 걸리적거려 불편해했다. 알루미늄 재질로 만들어진 껍질받이의 높이를 조금 잘라야 하는데 그 집에는 그라인더가 없어 잘라 낼 방법이 없었다.





  감 깎는 작업이 끝난 후, 트럭 뒤에 싣고 다니는 남편의 공구함이 생각났다. 그 안에는 그라인더도 들어 있겠지?라는 생각에 퇴근하는 남편을 불렀다.

남편은 트럭 공구함에서 그라인더를 꺼내와 껍질받이를 산뜻하게 잘라 주었다. 그러고 집에 오니 주인 없는 빈집은 어둠이 주인인양 차지하고 있었다.  잠시 잠들어 있던 이뻐지나 님이 다시 살아났다. 현관 앞에 작은 택배 봉투가 놓여 있었다.

다행히 봉투에 전화번호를 가리지 않아 택배 봉투를 뜯기 전에 전화부터 걸었다.

"이뻐지나 님?"

'누구세요?"

"저 백을순인데요. 전 물건을 주문한 적이 없는데 이뻐지나 님이 택배를 보내셨네요?"

"무슨 택배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잘못 온 건가 생각했지만 주소 3종이 너무도 정확했다.

그때 이뻐지나 님의 상냥한 목소리가 조심스레 들려왔다.

" 아 그거 저희 엄마가 보낸 거 같은데요?"

"엄마가 누구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황영숙이요.라는 말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아! 이 웬수!였다. 그 이름의 주인은 취미로 바느질을 하는 친구들이 모여 있는 또래 밴드 친구였다.

봄에 분양받은 명자나무를 친구에게 양보했다는 말이 기억나서 가지를 잘라 삽목을 해두었다. 며칠 전 확인해 보니 뿌리가 내렸길래 보내주었다. 

봉투를 뜯어보니 강냉이 한 봉지. 볶은 땅콩 한 봉지. 볶은 작두콩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이뻐지나 에미님 고맙소. 정성스럽게 보내준 요것들 맛있게 먹고 이뻐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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