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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17. 2023

미자 씨의 꿈






 감을 깎던 미자씨가 바가지에 주전부리를 가득 담아 내놓았다. 그 바가지는 입덧 때문에 힘들어하는 막내며느리에게 시어머님이 홍시를 담아 건네주던 바가지였다. 바가지가 살아낸 세월은 미자씨의 큰 딸보다 더 오래 살았다.

 지리산 자락 깊은 산골이 고향인 미자씨는 도시에서의 삶을 동경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겠다고 동네 언니를 따라 부산에 있는 신발공장으로 떠났다. 명절이 되어 고향을 찾던 어느 날, 우연히 시아버님의 눈에 들어 중매로 강 건너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사형제 중에 막내였다. 처음 만나던 날  햇빛에 그을린 검은 피부는 탄력이 있었고 훤칠한 키는  멋스러웠다. 미자씨는 남편과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시아버님과 협상했다. 시골에서 살기 싫으니 진주에 쌀가게를 차려 달라고 했다. 시아버님은 일 년만 같이 살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때만 해도 순진했던 미자씨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고 큰 딸이 태어나도 쌀가게가 차려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남편을 시아버님과 함께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었다. 기후변화로 복숭아 농사짓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 나무를 다 캐내고 감나무를 심었다.  멀쩡한 나무를 캐내고 어린 묘목을 심는 시아버님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고 떠들어 댔다. 동네 사람들의 구박에도 감나무는 잘 자랐다.
 
 미자씨는 젖먹이를 품에 안고 시아버님과 다시 대면했다. 아이 공부도 시켜야 하고 시골 일도 할 줄 모르니 약속대로 가게를 차려 달라고 했다.
 시아버님은  이제 감나무에 감이 달리기 시작했으니 곶감을 만들어 팔아서 가게를 차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쌀가게 사모님을 꿈꾸며  밤낮으로  부지런히 감을 깎았다. 미자씨의 손에서 뽀얀 속살을 드러낸 감을 남편이 덕장으로 옮겨 천장에 걸었다.
날씨의 변회가 심한 지리산골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50일의 시간을 보냈다. 달달하고 쫀득쫀득한 곶감이 되기를 기다리던 시어머님은 잘 마른 곶감을 내려 주물러서 손맛을 더했다. 시아버님은 곶감 꾸러미를 만들어 오일장이 열리는 곳마다 돌아다니며 팔았다.

 미자씨의 기둥이었던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몇 년 후. 시어머님도 떠나셨다. 젖먹이였던 세 딸도 곶감을 피해 모두 도시로 떠났다.
시아버님의 감나무는 지난 세월만큼이나 굵직한 둥치를 자랑하며 여전히 주렁주렁 감을 달아 내놓았다.



37년이 지난 지금도 미자씨는 강 건너 고향마을을 바라보며 감을 깎고 있다
 맛있는 곶감을 팔아 임영웅 콘서트를 보러 가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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