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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19. 2023

점분이가 안 보이네?



 곶감을 만들기 위해  4인 1조로 감을 깎는다. 감 농가 부부와 동네 아주머니 한 분, 그리고 나 그렇게 네 명이 팀을 꾸렸다. 안주인이 기계에서 감을 깎아 내면  아주머니가 받아 덜 깎인 껍질을 벗겨 내게 준다. 그 감을 받아 꼭지에 작은 고리를 끼워 컨테이너 박스에 차곡차곡 담는다. 바깥양반이  플라스틱 막대를 연결해서 일일이 감을 건다.
하루종일 앉아서 수 천 번의 반복 작업을 하는 일은 엉덩이에 군살이 생기는 고통을 인내해야 하고 끝없이 덤벼드는 졸음을 떨쳐내야 하는 일이다.
 그 시간 속에 두 아주머니 입에선 매일 많은 이야기들이 뛰쳐나온다. 마을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현재까지 63년 산 아주머니와 시집와서 지금까지 55년 산 아주머니의 수다는 내 귀속으로 스며들어 머릿속에 차곡차곡 자리를 잡는다. 이번엔 요즘 장터에 점분이가 왜 안 보이네?로 시작되었다.  




 동신마을엔 영달이의 큰 과수원이 있었다. 과수원은 동신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도 이웃마을 사람들까지 먹여 살렸다고 하니 그 규모에 대해선 가히 짐작할만했다.
 점분이는 과수원에서 일하는 일꾼들 밥을 해 주는 찬모의 큰 딸이었다.
뽀얀 피부를 제외하고는 인물이라고는 봐줄 것이 없었다. 키는 작달막했고 눈은 째졌고 코는 비가 오면 빗물이 들이칠 정도고 입술은 두툼했다. 늘 미니 스커트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마을과 과수원을 돌아다녔다.  
 천애고아 정식이는 과수원에서 일하는 남자였다. 키는 늘씬했고 인물은 영화배우 뺨치게 반듯했다. 과수원의 거친 일을 하느라 근육이 붙은 몸은 탄탄했다.
점분이는 남자다운 그 모습에 반했지만 정식이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주변을 돌며 애타는 마음만 졸이던 점분이는 정식이와 담판을 짓기로 했다. 과수원 일이 끝나고 정식이를 불러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너! 나한테 장가 안 오면 농약 먹고 네 앞에서 죽어 삔다!"




 점분이와 정식이는 부산으로 떠났다. 포장마차를 하며 아들과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던 정식이가 폐암으로 세상을 버렸기 때문이다. 정식이를 잊지 못한 점분이는 둘이 처음 만났던 그 과수원으로 돌아와 엄마와 함께 일꾼들 밥을 해주며 남매를 키웠다.









  과수원이 있던 자리엔 빌라단지가 들어섰고 전원주택이 들어섰다. 점분이의 작달막한 키는 세월에 쪼그라들어 더 작아졌다.
 오일장이 면 장터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던 점분이가 보이지 않았다.
63년 산 아주머니가 점분이의 안부를 물었다. 전화기 속에서 점분이 소식이 들려왔다.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만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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