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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Dec 05. 2023

누룽지가 미쳤다

어설픈 차박을 하며






두곡해수욕장에서 우여곡절 늦은 점심을 먹었다. 빈속에 넘긴 맥주가 잠을 불러왔다. 차의 뒷좌석을 눕히고 두 장의 요를 깔고 전기장판을 깔았다. 그 위에 요를 하나 더 깔았다. 폭신폭신한 바닥을 전기장판이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바닷가를 걸었다. 근처에는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저녁으로 회를 먹기로 했다. 마을을 걸으며 횟집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에게 물어봐도 근처에는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바닷가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횟집은 우리의 착각이었고 망상이었다. 그렇게 생선회는 다가왔다 약만 올리고 떠나는 파도처럼 그리움만 남겨 놓고 사라졌다.


 결국 저녁은 라면 가락으로 허기를 달랬다. 쫄깃한 회를 기다리던 위장은 라면이 들어가니 찌르르 성을 냈다. 소주가 섞인 맥주로 성난 위장을 달랬다. 파도 소리 들으며  밤낭만을 걷던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 깨면 별들이 차창을 들여다보며 엿보고 있었다. 자다 눈을 뜨면 구름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다 깨면 전봇대가 그들 사이에 떡 버티고 서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날이 밝고 새벽닭이 악을 썼다.


우리는 눈곱도 떼지 않은 채 비틀비틀 좀비걸음으로 바닷가로 갔다. 산 능선에서 태양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남편은 몽돌 아래에 있는 모래사장을 걷고 있다. 나는 몽돌을 깔고 앉아서 바다에 길게 누운 일출을 보고 있는데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걷고 있는 남편을 향해 밥 먹자고 소리쳤다.

집에서 씻어 온 쌀에  물을 부어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새벽의 찬바람이 밥이 되는 속도를 늦추었다. 밥이 되는 시간 동안 찌개거리를 준비했다. 김치에 양파 썰고 돼지고기와 함께 냄비에 넣어 볶았다. 물을 붓고 끓기 시작할 때 매운 고춧가루를 톡톡 털어 넣어 한소끔 더 끓였다. 마침 솥에서 구수한 누룽지 냄새가 났다. 밥을 푸고 물을 붓고 뚜껑을 덮었다.


신줏단지 모시듯 모셔 놓은 젓가락을 꺼냈다. 수저세트를 빼먹고 온 덕분에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3회째 사용 중이다.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건져 밥 위에 얹었다

수저가 없어 국자로 찌개국물을 떠서 맛을 봤다.

매운 고춧가루가 더해진 국물은 칼칼하고 시원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국자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퍼먹었다. 어느새 냄비가 바닥을 보였다.


 숭늉을 먹으려고  돌솥 뚜껑을 열었다. 국자로 누룽지를 긁어 숭늉과 함께 그릇에 담았다.

 알맞게 불은 누룽지를 그릇째 들고 마셨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구수한 누룽지가 미쳤다.




P, s  어린 시절 엄마는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에 불을 때서 열 식구의 가마솥 밥을 했다. 솥뚜껑이 울기 시작하면 아궁이에 불을 뺐다. 눈물이 잦아들면 솔잎 불을 약하게 지펴 뜸을 들였다. 밥에 뜸을 들이는 것은 항상 내 몫이었다. 난 일부러 불을 조금 세게 지폈다. 밥을 푸고 나면 노릇노릇한 누룽지가 눌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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