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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Dec 04. 2023

남편이 커피를 내린다..

차박을 하며

              


아침부터 달궈진 팬에 담긴 참깨처럼 타닥타닥 뛰어다녔다. 두 번의 어설픈 경험을 기억하며 차박에 필요한 살림 도구와 양념을 챙기느라 혼이 나갔다. 남편은 남편대로 차와 집안을 오가느라 정신이 없다.


 '남해바다에 가서 두루치기를 해 먹어야지. 바닷가니까 저녁엔 회를 먹어야지. 낼 아침엔 돌솥에 밥을 하고 김치찌개를 끓여야지.'


 머릿속의 계획을 순서대로  챙겼다. 쌀을 씻어 돌솥에 담고 찌개에  필요한 양념들도 작은 통에 담아 큰 바구니에 챙겼다. 한 번 더 준비한 재료들을 차곡차곡 머릿속에 넣었다. 


설렘을 가슴에 가득 담고 예치골을 떠나는 날씨는 파란색이었다.

핸드폰의 안내를 받으며 두곡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 해안도로 달렸다. 그 아래의 펼쳐진 남해 바다는 예치골 날씨를 닮았다. 은빛 윤슬이 사뿐사뿐 춤을 추고 있다.

마트에 들러 소주와 맥주, 고기를 샀다. 차박 장소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준비했다. 솥뚜껑 위에서 고기가 자글자글 익어갔다. 맥주에 소주 한 잔 섞었다. 고기를 먹으려는데 수저와 젓가락이 없다. 살림을 담은 바구니를 헤집고 헤집어도 가위와 집게 국자뿐이었다. 이런! 머리는 꼼꼼하게 챙겼는데 손이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철 지난 바닷가엔 먼지 쌓인 빈 가게들뿐이었다.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텐트 주변을 기웃거렸지만 주변머리가 없다.

궁여지책으로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주워 잘랐다. 먼지를 씻어 내려고 수돗가로 가면서 빈 가게를 기웃거렸다. 현관 앞에 먼지옷을 입은 컵라면 몇 개가 보였다. 그 아래엔 일회용 젓가락이 나란히 깔려 있었다. 두 개의 나무젓가락을 꺼내는 내 손은 빛의 속도보다 빨랐다. 먹이를 잡기 위해 달리는 치타보다 빠르게 차 있는 곳을 향해 뛰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는데 양심이 자꾸 뒷덜미를 잡아챘다. 지금은 양심을 먹을 때가 아니었다. 먼지옷을 입은 젓가락을 남편 앞에 의기양양 내밀었다.

남해의 공기와 햇살을 입은 고기는 맥주를 타고 목구멍을 지나 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배고픔의 반찬이 더해져 맛이 깊어졌다.


 점심을 먹고 남편이 커피를 내렸다. 남편이 내려 주는 커피가 유난히 맛있다.  몸의 긴장을 녹인 따뜻한 커피는 슬금슬금 잠을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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