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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치골에 산다
당신 혓바닥은 소 혓바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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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거인
Dec 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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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기억은 신비하다. 머리의 기억 창고는 살아온 세월의 반비례로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에 비해 몸은 애쓰지 않아도 세월의 습관을 기억하고 있다.
눈은 뜨지 않았지만 습관처럼 몸은 깨어났다. 방 안은 아직 어둠이 주인이다. 눈을 비비며 휘청휘청 거실로 나왔다. 시계가 다섯 시 오 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벽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눌러 거실을 밝히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소금물을 입 안에 가득 담았다. 볼을 빵빵하게 부풀려서 우글거리며 텁텁한 입안을 헹구었다. 전기 주전자에 물을 받아 스위치를 눌렀다. 주전자가 물을 끓이며 뽀글뽀글 웃음소리를 냈다.
두 개의 컵에 뜨거운 물을 절반쯤 채우고 찬물을 부어 가득 채웠다. 두 개의 차 수저를 한 손에 쥐었다. 물이 담긴 컵을 양손에 들고 거실로 나왔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에 깬 남편도 한쪽 눈을 찡그리며 거실로 나왔다.
우리는 매일 아침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빼놓지 않고 먹는 게 있다. 음양탕 한 컵에 종합비타민 한 알과 화분 그리고 꿀에 재운 아로니아 가루다.
먼저 화분을 먹고 아로니아가루 순서로 먹는다. 이유는 꿀을 먼저 먹으면 수저에 남은 잔여물이 화분에 묻기 때문이다.
아로니아가루를 재운 꿀이 되직해서 깨끗하게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수저에 비해 남편의 수저는 너무 깨끗했다.
남편은 꿀에 섞었지만 떫어도 너무 떫다며 잘 먹으려 하지 않았다. 슬쩍 피해 간다고 생각한 내 입이 쫑알거렸다.
"이거는 왜 안 먹는데? 몸에 좋은 거니까 꾀부리지 말고 빨리 먹어!"
"먹었어!"
"언제?"
"방금!"
남편의 수저를 다시 확인했지만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다.
의심으로 가득 찬 내 얼굴을 남편 얼굴에 들이대며 못 믿겠다는 표정을 하며 물었다.
"당신 혓바닥은 무슨 소 혓바닥이야?"
몇 초간의 시간이 흘렀다. 남편이 눈을 끔벅끔벅하더니 "음~
매애!" 소리를 툭 내뱉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배를 움켜잡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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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오르며 숲 길 걷기를 좋아하는 작은거인입니다. 사는 이야기를 일기처럼 기록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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