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외로움이 익숙해진다

by 지푸라기

나는 알고리즘을 참 잘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다. 결혼하고 보니 결혼 전에 내가 누려봤던 호사가 애인이 나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최선의 데이터를 갖고 우리의 시간을 달콤하게 꾸며줬다는 것이다. 그게 벌써 15년 전이다. 나의 일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거의 모든 바깥활동은 나의 손구락으로부터 시작된다.아이가 생기고서부터는 어디 맛집, 나들이를 가볍게 가려해도 부모의 끔찍한 사랑 안에서 검색에 반영해야 하는 사항이 점점 늘어나니 30대에 내 검색실력은 따라서 일취월장이었다.


그러나 40대 나의 해가 더할수록 같이 사는 사람이 이 일을 당연히 여기는 것에 짜증이 난다. 생각해 보면, 늘무언가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그에 대한 짜증은 있었는데 말이다.

40대의 짜증은 특히, 결혼 10년 차 이상의 삶 속에서 뭔가 불합리하다 생각되는 반복적인 일 앞에서는 짜증의 농도와 결이 다르다. 이전까지는 가족들을 위해 단순히 불변 앞에 결국 삭히게 되는 퍼포먼스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아주 많이 태연하게 반갑지는 않지만 '다시 너를 만났네, 어디 보자' 며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것인지를 먼저 내 스스로에게 따져 묻는다.

내 입맛, 내 욕망을 저 밑에서 끄집어내어 내게 유리하도록 당당하게 동선을 짠다. 나 10년 넘게 이 짓 했으면, 이만한 수작은 부려도 되는 거 아닌가!


내 사십춘기는 나를 최우선은 아니어도
우선으로 올려놓는다.


최근에는 알고리즘 덕으로 내 겨울 코트, 항공권, 결혼기념일 호텔식사권, 아들 패딩, 살림살이들을 득템 하는 시간이 휘몰아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매일 오는 택배들을 점차 부담스럽게 맞이하며 '넌 어디서 왔더라?'를 기억하려 애쓰고는 몇 천 원을 버리고서라도 불필요한 건 없는지 나름 꼼꼼하게 수습하고 있었다.가계를 위한 소소한 결정을 하는 과정 속에 나는 갑자기 극도로 외로워졌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느라 바쁜남편과 이런 대화는 사치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나뿐인 사춘기 중등아들이 살갑지 않아 져서일까. 지금 내 주위에 남은 사람들 중 시시콜콜 내 얘기를 할 사람이 없어서일까.

이유를 찾으려 하니 더 짙어지네, 외로움.



알고리즘으로 만난 최근 영상에는 최민식 배우가 세트장에서 레디 액션이라 하면 철저하게 혼자서 해내야 하는 그다음 순간이 너무 고독하고 외롭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40대가 되어서야 내 삶을 좀 꾸려보려니 봉싯봉싯 인생은 외로운 것이야를 말해주고 있는 사십춘기는 달콤 쌉싸름하다. 아직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