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는 잘못이 없지

=자녀를 '배신자'로 만드는 순간, 망한다

by 지푸라기

남편은 사춘기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디서나 예의 바르다, 순수하다, 책임감 있다, 정직하다, 성실하다 들리는 주위 칭찬들을 맹신하며 우리 아들은 사춘기로 부모 속썩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장담은 자칫 위험하다. 부정적인 가능성을 일찍이 차단시켜 후에 그런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다는 준비 불충분을 앞세워 낙담과 신세한탄에 빠지기 십상이다. 나는 시댁에게 호되게 당하고부터는 장담이라는 단어를 차마 내 입에 담을 수 없겠더라. 장담하건대 라는 말만큼 거만한 태도가 있을까.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말이다.


내 아들은 밝고도 밝았다. 지금 돌려봐도 너무 순수하고 해맑게 쉼 없이 엄마에게 재잘거리던 그의 귀여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수많은 동영상들이 이에 대한 증거이다. 우리 세대의 부모 자식 간의 서먹함은 여유 없던 시절 어쩌면 당연했을지 몰라도 그 서먹함이라는 큰 벽을 허물지 못해 자식들인 우리가 결국 부모에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서먹함을 세운 부모나 그 벽에 부모에 대한 서러움만 한가득 새긴 자식이나 모두 참 불쌍하다. 나는 자식을 위해 그 벽을 함부로 세우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내 결혼생활이 시댁으로 엉망진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과의 대화시간은 꾸준히 채워갔다. 특히, 13년 동안의 때로는 버겁기도 했던 그와의 잠자리에서 아들은 내게 속마음을 많이 내보였다. 굳건히 그의 마음에 동조하는 내가 너무 다행스러웠다.




중1 후반기를 달리고 있는 아들은 초반보다는 말투가 상당히 까칠하다. 변성기로 그의 채랑채랑한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아쉬운 엄마는 그의 퉁명스러움에 순간 끼익 서대는 신경들을 티 나지 않게 처리하느라 바쁘다. 그래도 아직 그가 좋아하는 팝송을 흥얼거리고 춤추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니, 여전함 그 자체가 위로가 되었다.

밤새 춤추며 연습한 체육대회 반 응원전을 마치고 온 아들에게 찰싹 들러붙어 오늘 어땠냐, 사진 좀 보여달라고 보챘다. 그는 흔쾌히 폰 속의 사진들을 보여주는가 싶더니만, 갑자기 폰을 덮으며 이것저것 더 보고 싶은 내 마음을 건방지게 '이제 엄만 다 본거야'라고 거절했다. 그 순간, 내가 지금 대체 뭘 본거야 눈알을 뒤집고 재차 확인하고 싶을 지경이었고, 이에 내 소용돌이치는 꽤 부정적인 감정의 스위치가 켜졌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아들아, 너는 널 키워준 엄마에게 감히 이렇게 행동할 수는 없다. 짧은 순간이지만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방으로 들어오면서 너 이제 밥 네가 알아서 차려먹어라는 유치한 소리를 지껄이고 온 걸 보면. 그러나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하니 이 상황을 침착하게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신이 주시는 판단이 들었다. 아들을 불렀다. 나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한 후, 그의 감정을 물었다.


엄마한테 기분 나쁜 건 없어. 모르겠어. 그저 엄마가 내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게 싫을 뿐이야.

아들의 차분하고 진심인 말투에서 '배신자'의 프레임을 씌우려고 한 내가 너무 부끄러움과 동시에 사춘기는 잘못이 없지라는 끄덕임으로 갑자기 멋쩍은 웃음이 퍼져나가며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 아들 참 많이 컸다.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도기에 있는 너는 부모에게 반항을 위한 고의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저 네 안의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듯 갑툭튀의 행동을 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나는 아들 행동으로 그의 마음까지 싸잡아 정죄하는 엄마로 잠시 분했었다. 결국, 언제나 이 집에서 두 남자에게 밥을 무기로 삼아 내뱉는 말은 사과를 했다.


엄마, 괜찮아?

웃고 우는 엄마에게 던지는 아들의 말을 듣고 결심했다. 아들이 홀로 사춘기를 지나가는 동안 내가 아들에게 괜찮냐고 자주 물어야겠다. 그러려면 나는 괜찮아야 한다. 내가 괜찮으려면 내 눈에 거슬리는 행동으로 그의 마음이 나를 배신했다 여기지 않으리. 내 귀중한 시간을 감정낭비하는데 쓸 수 없다. 또한 그가 배신자가 되는 순간, 모자의 관계는 신뢰를 잃을 것이고 한번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그러다가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 나는 아들의 앞으로 6년이 최선의 경험으로 채워지길 누구보다 바란다. 망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 6년, 이왕이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윈윈전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