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시댁사건
4차선 도로를 2차선으로 정주행 하는데 "쿵" 소리와 함께 차를 세웠다. 순간, 며칠 전 남편 몰래 내 돈으로 득템 한 블랙 캐시미어 코트 사이즈를 55로 교환해야 할지 말지 아울렛을 향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고심하는 탓에 내내 뜨거웠던 내 머릿속을 들켜버린 것 마냥 흠칫 놀랐다. 내 운전석 뒤를 박고 본인도 놀랐는지 슬금슬금 내 차와 멀어지던 주범은 내 비상등을 보고 그제야 사고를 확신하고 멈추는 듯했다. 재수도 없지, 하필 나?!
갑여사는 차에서 내리더니 평온한 얼굴과 몸짓으로 사고 난 내 차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고, 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 나에게 자기 번호를 받으라 했다. 나보다 2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그녀의 노련하고 계획된 차분함에 홀린 듯 폰을 열어 번호를 받으니 갑여사는 블박으로 보험접수 하시고 자기 약속 있어 가야 한다며 씨불였다.
"저기요, 잘 가고 있는 차 박으셨잖아요?"
"어딜 가시려고요! 지금 보험 출동기사 부를 테니까! 꼼짝 말고 기다리세요!"
육아하며 아들이 다칠까 "어어어! 안돼"를 수도 없이 외치며 달린 민첩함으로 원-투-쓰리 빠른 스텝으로 갑여사에게 다가가 외쳤다. 내 목소리 이미 심장박동 비정상 상태에서 나오는 쇳소리. 이 사고를 판단할 제삼자가 오니 내 마음은 좀 진정이 되기 시작했고, 블박에는 명확히 차선을 넘어온 그녀의 차가 증거로 남았다. 그런데도 영 찝찝했다. 내가 마주한 갑여사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그득했지만, '미안하다' 한 마디를 내뱉을 수 있는 사람됨이 안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내 시어머님처럼.
이 사건 끝까지 가겠는데
작년 아들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군지 이사를 남편에게 제안했다. 신도시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문제 아이들 때문에 담임이 3번 바뀌는 사건에 맞서 학교에 끊임없는 민원을 제기하고 대표 엄마를 만나 대책을 세우는 등 누구는 하지 않아도 될 일들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때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아이는 문제가 없다 우기며 담임 선생님들을 괴롭히는 부모들에게 신물이 남과 동시에 곳곳에 존재하는 그들로 인해 내 성실한 아들이 학습피해를 입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한 후회 없는 선택은 너무도 당연했다.
"오빠가 그룹장 되고 일이 너무 바빠져서 이사준비 하느라 제가 너무 힘들었는데, 마침 개학 전 2월 28일 이사가 되니 다행이에요"
'어머님께서 그런 말씀하시면 안 되죠. 어머님이 말씀하신 그 기본 저한테는 없으셨잖아요.'(10년 전 사건)
시어머님은 내가 전세금을 더 얻어 무리하게 이사한 것이 탐탁지 않으셨네. 남편은 역시나 15년째 자기 엄마 말에 어떠한 진심이 싸여 있는지 보지 못하지만 말이다. 10년 전 우리에게는 큰 고부 갈등이 있었고, 그 후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로부터 3-4년간 나는 시댁과 연을 끊고 살았다. 숨소리로도 살인 충동을 느꼈을 만큼 미웠던 신랑이 점점 잠자리를 하는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졌고, 솔직히 나를 인정하지 않는 시댁과 싸울 일이 없으니 아늑할 정도였다. 다만 나도 인간인지라 남편에 대한 측은지심이 불편했을 뿐이다. 1년 정도 가끔 그는 혼자 본가를 다녀왔다. 당시 엄마냐 vs 며느리냐 택일을 바라셨던 시어머니 앞에 며느리만 안 오면 얼씨구나 더 좋지 라는 완벽한 그림을 바치지 않기 위해 서로 합의한 조건이었다.
"엄마가 다 같이 다음 주에 오래"
'네 집 여자들은 한결같이 기분 나는 대로 퍼지르고, 기분 풀리는 대로 웃음통 터뜨리는구나.'
뻔하다. 나는 몇 년간의 치유를 죄송스럽다 사과해야 하고, 그녀는 웃으며 자신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고 마음 넓은 어른인 양 시원찮은 화답을 할 것이다. 그러면 이게 벌써 두 번째인데, 나에게 세 번째는 없어야 했다. 신랑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 재왕래 시 안부전화 주기, 시댁에서 자고 오기, 여행 가기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조건을 달아 명시하고, 세 번째로 무릎 꿇고 머리 숙여 시어머님께 죄송하다 할 일은 우리가 사는 한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재왕래가 그저 고맙다고 동의했다. 그렇게 5세 아들을 안고 박차고 나왔던 집에 다시 들어가 속에도 없는 웃음을 장착한 조연 여배우로 분한 빈 껍데기 시댁왕래가 시작되었다.
"오빠가 작년에 그룹장에 이어 올해 핵심리더로 선발되어서 더 정신없어요."
나는 당연히 유일하게 3자녀 중 대기업 계열사에서 한 번의 누락 없이 승승장구하는 자신의 대견한 아들을 누구보다 기뻐하는 듯 보였던 시어머님 앞에 자랑을 늘어놓았다. 친정 아빠는 이를 나의 생각 없는 행동이었다고 지적하셨다. 신랑 자랑은 잘나가는 아들 덕을자기가 오롯이 보지 못해 얄미운 며느리가 하면 안 된단다.
얘 그러는 동안, 넌, 넌 뭘 했는데?
어망처망해서 이성을 잃을 뻔했다. 표정이 싸늘하게 싹 바뀌면서 나를 똑바로 바라봤던 그녀의 얼굴.
"어머님, 뭐하긴요.(얼척이 없네요) 이 사람 일하는 동안 저도 두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와서 아들 뒷바라지 하고 집안 살림 제가 다 하고 있잖아요."
당신이 하신 육아와 살림은 금딱지가 붙어 있고, 내가 하는 육아와 살림은 시궁창이라는 건가?
당신 아들이 하는 일은 에르메스 급이고, 내가 하는 일은 아러메쓰 급이라는 건가?
착각하시는 시어머니라는 권리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나의 최선을 함부로 판단하여 무시할 수 있지. 직장이라면 벌써 뒤엎고 싶었다. 15년 차 되니 손 잡고 좀 참아봐 라는 신호로 신랑이 한 마디 거든다. 신랑 내 품 안에서 많이 컸다.
"엄마, 무슨 소리야. 상미가 하는 일 다 하고 이번에 이사 준비까지 혼자 다했는데."
"이것들이 그냥 한 소리 갖고 쌍으로 덤비고 있네."
그때 그녀는 내 기준에서 한 방 먹은 듯 그리고 멋쩍은 듯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는 못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10년 전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불만이 있다. 작년 시아버님 방광암 로봇 수술 당시 우리가 자기 딸보다 적게 보탰던 돈 때문이면 아다리가 맞는다. 시누이와는 10년 전 그 사건 이후로 진정한 사과를 못 받아 나와 마주친 적은 거의 없는 남과 같은 존재이다. 나 같은 건 자기 집에 필요 없다며 내게 아직도 살이 돋지 않는 깊은 생채기를 내고는 자기 아버지 로봇 수술시키자며 남동생에게 돈을 보태라 상의 없이 통보했던 그녀에게 어찌 됐든 별소리 없이 돈을 건넨 건 내 최선이었다. 그전에 최소한 양심이 있다면, 내게 이 때다 구실 삼아 진정한 사과라도 했어야 했다. 고부갈등을 극단으로 치닫게 한 장본인인 그녀에게만큼은 시어머니처럼 그 집안의 '뭐든 웃어 넘기자'에 조금도 동참할 생각이 없으니깐. 대화불통 폭노위계를 모르는 그녀들은 변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