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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pr 02. 2021

한국에서 여성 영상기자로 산다는 것

한국에 돌아온 지 벌써 일 년 반이 다 되어간다. 고모네 얹혀살면서 잘 자고, 잘 먹고, 사촌 동생이랑 잘 놀고 고모, 고모부랑 여러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고모, 고모부는 그 당시 나에게 제일 필요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나에게 선물해 주셨고 나는 하루하루 안정되어갔다. 고모, 고모부가 나에게 준 위로와 사랑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던 어느 주말 오후, 색칠 공부에 집중하는 사촌 동생의 모습을 보고 울컥하기도 했다. 별거 아닌 일을 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없었던 내가 '아 맞다, 이런 여유도 중요하잖아'라고 느꼈을 때 내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쳐온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취업은 서두르지 않았다. 일단 나 자신을 보듬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렇게 정말 기본에 충실히 지낸 지 두 달쯤 됐을 때인가, 스스로 웃는 일이 많아졌다고 느꼈을 때쯤, 우연치 않게 연합뉴스TV 채용 공고를 보았다. 내가 외신에서 일할 때 한국 뉴스는 연합뉴스만 모니터링했기 때문에 회사 이름이 나한테는 어느 지상파 방송사보다도 익었고 그래서 여기는 한번 넣어보자는 생각으로 처음으로 한국어로 이력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번에 바로 붙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서류에 합격했고, 실무 면접을 보러 가게 됐다. 너무 놀랐던 게 수십 명의 지원자들 중 여자는 나 하나였다. '설마...' 하는 마음에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다. 잘 못 본 게 아니었다. 진짜 나 하나였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튀었다. 내가 있으면 안 되는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면접관들은 내가 만든 포트폴리오에 대해 그리고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물어봐 주셨다. 카메라 실기 시험도 봤다. 하지만 난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정말 별생각이 다 들었다.


한국에서는 이 일이 아직 남자들만 하는 일인가? 내가 이 일이 정말 하고 싶으면 될 때까지 계속 부딪혀봐야 하는 건가 아니면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 건가?


운이 좋았던 건지 실무 면접에 합격했고, 임원 면접을 보러 가게 됐다. 임원 중 한 분에게 '카메라부터 여러 장비들 남자들도 들기 힘든데 잘 할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저 질문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때는 정말 이해가 안 됐다. 약간 화도 났다. 나는 무리 없이 잘 해오던 일이라고 열심히 하겠다고 당차게 답했다. 그렇게 나는 연합뉴스TV에 영상기자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입사 첫날, 예상도 했고 마음도 굳게 먹고 왔지만,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40명 정도의 부서 선후배들이 다 남자라는 것을 알고 두렵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잘 할 수 있을까?


군대를 다녀오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 말해 줬던 군대 같은 분위기... 처음에는 선배들이 일정 나가고 들어오실 때마다 후배들이 '수고하십쇼!',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인사도 지금처럼 크게 하지 못했다. 모든 방식이 낯설었다. 입사하고 한 달 동안은 어떠한 압박감에 퇴근길에 매일 혼자 울었지만, 살아남고 싶었다. 선후배들이 감사하게도 많이 도와주셨기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홍콩에는 여성 영상기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에는 여성 영상기자들이 많지 않다. 현직에 계신 분은 열댓 분 남짓. 그런데 내신과 외신이 다루는 일에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나조차도 여자로서 부담스러운 상황들을 전보다 많이 겪는다. 체격 좋은 남자들 사이에서 몸싸움을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부담은 오히려 나를 일에 대해 더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계속 부딪히고 부딪혀서 노하우를 쌓으면 된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시청자에게 뉴스를 전하는 영상기자에게 성별은 중요치 않다.


입사한지 몇 달 안됐을 때, 대구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가 급증했고 아무래도 감염병 현장이다 보니, 부서에서 출장 자원자를 찾았다. 잃을 게 없어 무서운 게 별로 없는 나는 자원해 2주 동안 코로나19 취재 및 현장 연결을 하러 대구에 내려가 있었다. 그 후로도 장마, 태풍, 폭설과 같은 격한 현장에 다른 선후배들과 똑같이 투입됐다. 이렇게 성별이 아닌, 한 명의 영상기자 자체로 대해지고 평가받고 싶다. 잘하든 못하든 '여자라서'가 아니라 '나라서' 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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