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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pr 02. 2021

홍콩 범죄인 인도 법 반대 시위


2017년부터 외신에서 영상기자로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범죄인 인도 법 반대 시위 취재였다. 홍콩 정부는 2019년 초 범죄인 인도 법을 개정하여 중국, 마카오, 대만 등에서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홍콩의 반중 인사나 인권 운동가가 중국 본토로 송환되는데 해당 법안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2019년 중순 수많은 홍콩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 법에 반대하며 길거리에 나왔다. 범죄인 인도 법 반대 시위는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장되었고 중국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민주화 운동으로까지 그 성격이 확대되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들을 하루하루 취재하게 되었을 때 내가 무서웠던 건 최루탄도 물대포도 경찰의 폭력도 아니었다. 내가 무서웠던 건 오히려 내 부족한 경험과 실력이었다. 스스로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최고의 영상을 통해 그 순간을 더 발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전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온몸이 홀딱 젖은 채로 두발이 물집과 멍투성이가 되도록 카메라를 들고뛰었지만 아프고 힘든지 몰랐다. 시위에 참여한 친구들이 폭행당하고 연행되어가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던 일은 매일 현장에 나가 자유를 외치는 홍콩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었고 그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마도 그때 영상기자로서 제일 많이 배우고 성장했던 것 같다.


몇 년 전, 홍콩에 우산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분노는 금방 사그라들었고 다들 바쁘게 살아갔다. 난 그래서 사실 홍콩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의 힘이 필요할 때는 그냥 모른 척 누린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이 잠시 동안 누리는 것처럼 보였던 안정과 평화의 날들은 폭풍전야일 뿐이었다. 그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도 이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눈앞에서 실제로 경찰봉에 고무탄에 스펀지탄에 다치고 피를 흘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비규환이었다. 홍콩 경찰들은 기자들조차 보호해 주지 않았다. 동료가 다치기도 했다. 우리가 입은 프레스 조끼는 그냥 천 쪼가리에 불과했다. 헬멧과 호흡기 마스크를 쓰고 프레스 조끼를 입고 최대한 보호장치를 많이 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하루는 쇼핑몰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그날이 유독  기억 남는 이유는 장소의 특성상 충돌이  격했고 피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쇼핑몰은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하철 공사는 해당 지하철역을 뛰고 운행하겠다고 했다. 셔터가 내려간지는 이미 오래였다. 사람들이 쇼핑몰에 갇혔다. 연행되어갔다. 의도된 것인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그날 나는 겨우 쇼핑몰을 빠져나왔고 거진 1시간을 넘게 걸은 후에야 택시를 잡아 귀가할  있었다.


택시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야경. 평상시에는 그렇게나 화려하게 반짝이던 홍콩인데 그날따라 홍콩은 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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