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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pr 04. 2021

영원한 이방인


제3문화 아이들.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빌리자면 ‘이 아이들은 성장기의 상당 부분을 부모들의 문화 밖에서 보내는 아이들이다. 어떤 문화에도 온전한 주권을 가지지 못하지만, 다문화적인 환경에서 자란 그들은 부모의 문화와 그 외의 문화 모두와 관계를 형성한다.’ 자신들 혹은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고 간다. 그렇기에 그들이 처한 물리적 환경 자체도 여러 번 변할 수 있고 그들 삶 속의 사람들도 늘 변한다. 나도 제3문화 아이들 중 한 명이다.


모국어는 한국어지만 학교에서 영어로 교육을 받았으니 글을 읽고 쓰는 건 영어가 편하고 대부분의 학업 지식은 영어로만 알고 있으며 한국사 대신 세계사를 배워서 한국에 대한 역사는 세계사의 일부분으로만 배웠다. 친구들은 전 세계 나라 사람들이었고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친구들도 많았다. 어떤 친구들은 머리를 한 번도 자르지 않았고 밥을 손으로 먹었다. 입는 옷이며 먹는 음식, 생활하는 방식 전부 다 달랐지만 우리는 서로 다름을 존중하라고 배웠다.


그렇게 확장된 세계관 갖게 되면서도 성장기는  인간의 가치관 같은 많은 것들을 성립해 나아가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  시기의 상당 부분을 외국에서 보내다 보면 본인의 정체성에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랬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 사람인가?


누군가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당황하고는 한다. 부모님이 아직도 중국에 살고 계실뿐더러 어릴 때 한국에서 보냈던 시간이 기억에 많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와 문화가 익숙지 않을 때도 많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조금 무서울 때도 있었다. 쪽팔리지만 어릴 적 방학에 잠깐 한국에 나왔을 때 얼 타다가 길거리에서 삥을 뜯긴 적도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때 내 모습은 한국인스럽지도 외국인스럽지도 않았다. 나는 바보가 아니었지만 그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이 나를 바보처럼 보이게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중국 사회와 문화가 많이 익숙하지도 않다. 집에서는 한국인인 부모님과 한국식으로 살았으니 내가 어떻게 중국 것에 대해 전부 다 알겠나. 더군다나 중국과 한국 사이에 외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그들은 바로 우리를 손가락질했다. 사드 때도 그랬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버스를 기다리는 나에게 지나가던 한 남자는 욕을 했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살면서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현재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내가 겪어온 모든 것들의 집합체일 수밖에 없다’이다. 혼란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괜찮다. 생각보다 같은 고민을 나누는 사람들은 많고 그게 마음에 위안을 주기도 한다. 나는 아빠, 엄마의 딸로, 동생의 언니로 그리고 친구들의 친구로 내 몫을 해내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나는 집이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하지만 어디든 나의 집이 될 수 있기도 하다. 그게 내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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