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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l 02. 2021

한국에서 여성 영상기자로 산다는 것 2


여자들은 못 찍어. 잘 찍는 여자를 못 봤어.


40명 정도의 부서원들 중 유일한 여자인 나는 몇몇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고는 했다. 내가 여자라 못 찍을 거라고 선을 긋는 거 같았다. 오기가 생겼다. 그런데 상처 난 부위에 또 상처가 났다. 그리고 굳은살 때문인지 점점 무뎌졌다. 사실 무뎌지다 못해 흔들렸다. 의기소침해졌다. 그런데 선배 한 분께서 남자도 못 찍는 사람은 못 찍는다고, 그런 뭣 같지도 않은 말이 어딨냐고 하셨다. 잠시였지만 흔들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맞다. 여자라서 못 찍는 사람은 없었고 그건 편견 그 자체였다.


연합뉴스TV 여자애 실수했다.


나는 ‘연합뉴스TV 여자애’로 불렸다. 타사 여성 영상기자들도 다 똑같이 ‘(회사 이름) 여자애’로 불렸다. 그렇게 부르는 게 이름을 모르는 상태에서 더 편해서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남자인 내 동기가 한 번도 ‘연합뉴스TV 남자애’라고 불리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다. 그 친구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현장에서 나는 항상 눈에 띄었다. 그래서 못하면 더 크게 문제가 되고는 했다. 나는 내 존재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더 잘해야 했다.


물론 나로 인해 여성 영상기자에 대한 인식이 나아져 여자 후배들이 한자리라도  차지할  있게 된다면 그거야 정말 감사한 일이겠지만 애초에 그게  몫인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그게 어떻게  몫이란 말인가.


요즘 여자들이 남자들 자리 뺏는다니까.


최근 들어 나를 포함해 여성 영상기자들이 많이 뽑힌 건 맞다. 하지만 그래봤자 아직도 각사에 한두 명이 전부다. 아예 한 명도 없는 데도 있다. 현직에 계신 여성 영상기자들은 열댓 분 남짓. 말도 안 되는 성비다. 더군다나 여성 영상기자들 중 남성 영상기자들의 자리를 뺏은 사람은 없다. 그건 피해의식이다. 동료가 당당하게 차지한 자리이다. 폄하하지 말자.


그래도 공감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선후배들이 있어서 큰 힘이 된다. 묵묵히 도전하는 그들을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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