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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l 10. 2021

‘예스’맨의 최후

나는 기자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겼다. 나는 문제를 문제 삼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은 어릴 적 패기였을까?


나는 이제 점점 ‘노’여도 ‘예스’를 외친다. 벌써 ‘예스’맨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예스’맨의 최후는 꼰대가 아닐까 싶다. 나는 결국 문제들을 대물림 시키겠지. 그리고는 그냥 참으라고 말하겠지. 나도 참았다고. ‘라떼는’ 더 심했다고. 과연 나는 다를까?


상상만해도 싫다. 그래서 이제 나는 문제를 문제 삼기로 했다. 한 후배가 그러더라. 문제를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맞다. 문제라고 소리 내야 한다. 그래야 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정답으로 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문제를 문제 삼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또는 침묵을 강요하거나 협박하는 사람에게 왜 문제를 문제 삼지 않는지 물어보고 스스로에게 당당해져야 한다.


최근에 문제를 문제 삼았다. 그래도 어릴 적 패기만은 아니었나 보다. 내 안에 쌈닭이 아직 있나 보다.


아직 문제를 문제 삼지 못한 일들도 많다. 어른이 돼서 잃을 것이 더 많아진 건 확실하다. 두렵고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때로는 기습법으로 또 때로는 정공법으로 상황에 맞춰 현명하게 문제를 문제 삼을 줄 알게 되었으니 괜찮다.


나를 위해서다. 왜냐면 부조리함과 불합리함 속에서 이러다 정말 암에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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