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이 Dec 20. 2021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2


12월 8일


침대가 딱딱해서 불편했어.


다람쥐 할머니랑 고양이 언니랑 스무 고개를 했어. 방 안에 있는 물건으로 하기로 했는데 다람쥐 할머니가 할 때마다 ‘방 안에 있어?’라고 하셔서 너무 웃겼어. 다람쥐 할머니가 내가 웃는 게 이쁘다고 하셨어. 고양이 언니도 웃는 게 이쁘다고. 그래서 내가 다람쥐 할머니도 웃는 게 이쁘다고 말씀드렸어. 다들 웃는 게 이렇게 이쁜데 웃을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병동에는 독실도 있는데 안에 있는 사람이 자해를 했는지 간호사 선생님들이 붕대랑 물걸레를 들고 왔다 갔다 하셨어. 언니가 땅에 피가 떨어져 있었데.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자해를 했는지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이랑도 친해졌어.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일 거라는 편견 아닌 편견이 있었던 것 같아. 다들 아플 뿐 나쁜 사람은 없었어. 아 한 명! 오늘 들어왔는데 반말하고 욕하고 그래... 시끄러워...


이제 티머니 카드로 공중전화 쓸 수 있게 됐어. 오빠랑 통화해서 마음이 편해. 나 많이 보고 싶은 거 같더라? 근데 내가 더 보고 싶어. 사진 꺼내달라고 부탁드렸어. 그래서 침대 옆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곳에 붙여놨어. 보고 또 보는데 굵은 눈썹이며 얄쌍한 눈이랑 입술이며 아주아주아주 매력 있단 말이야? 사랑해.


여기서 제일 마음 쓰이는 친구는 토끼 동생. 19살인데 손목이 양쪽 다 자해투성이야. 어린 나이에 안타깝더라... 학교폭력을 당했데…


다람쥐 할머니랑 고양이 언니랑 저녁 먹고 사과를 먹었어. 칼 반입이 불가해서 귤, 바나나만 먹다가 내가 좋아하는 사과를 깎여진 상태로 할머니 딸 덕에 먹었지. 얼마나 맛있던지. 여기서는 이렇게 모든 걸 쪼개고 쪼개서라도 나눠 먹어. 가족 같아. 정들었어 벌써.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