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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Dec 23. 2021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5


12월 12일


요즘 아침을 아예 안 먹고 점심, 저녁도 잘 못 먹었더니 살이 2킬로 빠졌어. 먹고 자고 먹고 자니까 살이 쪘으면 쪘지 빠질 줄은 몰랐는데... 유지됐으면 좋겠다.


오빠가 왔다 갔어. 얼굴 못 본건 너무 속상하지만 한 공간에 잠시 머물렀던 것만으로도 너무 좋더라. 노래 넣어줘서 고마워. 플레이리스트 마음에 들어. 성시경의 두 사람 듣고 있어. ‘때로는 이 길이 멀게만 보여도,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흘러도, 모든 일이 추억이 될 때까지,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쉴 곳이 되어주리.’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도 써줬더라?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음... 편지 읽었어... 손목에 상처 내서 미안해. 충격이었구나. 미안해. 놀라게 해서 정말 미안해. 근데 오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을까. 왜 하필 이럴 때 나를 만났을까. 난 존나 이기적인데.’ 이런 생각 하지 마. 오빠 하나도 안 이기적이야. 적어도 나한테는. 내 옆에 계속 있어줘. 그거면 돼. 나 많이 노력할게. 사랑해.


12월 13일


방에  자리가 비어있었는데 새로 들어왔어. 강아지 동생은 18살인데 토끼 동생만큼 자해를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하긴 했더라구... 강간을 당했데...


하루 종일 심리 검사 겸 상담을 받았어. 그만 울 법도 한데 또 울었어. 머리가 아팠어.


고양이 언니가 그냥 조울증인 줄 알았는데 조현병 같아. 망상을 해. 나보고 잠입 취재하는 거 아니냐고 MP3가 도청장치 같데... 진짜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는다. 기분이 별로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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