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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Dec 26. 2021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7


12월 16일


갑자기 새벽에 간호사 선생님이 개방으로 넘어갈 니까 짐 싸라고 하셔서 싸서 개방으로 넘어왔어. 이렇게 빨리 자리가 날 줄 몰랐어. 아침잠이 많은 토끼 동생이랑 강아지 동생이랑은 인사도 못 했어. 이제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는 핸드폰 쓸 수 있다!! 행복해.


방에는 캥거루 할머니, 물개 언니, 나, 여우 동생이 있어. 여우 동생은 21살인데 내일 퇴원한데. 토끼 동생이랑 친한 동생들도 소개받았는데 다들 곧 퇴원한다고 하더라구... 폐쇄에서는 핸드폰을 못 쓰니까 사람들이랑 친해지기보다는 각자 노는 느낌? 살짝 적응하기가 어려워. 외롭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오빠랑 하루 종일 연락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너무 너무 좋다. 사랑해.


12월 17일


아니, 폰을 못 쓸 때는 몰랐는데 이거 참 이렇게 힘들 줄이야. 아침에 기다리는데 정말 죽는 줄... 저녁에야 뭐 약 먹고 자면 되니까 괜찮은데... 그리고 계속 연락하니까 더 보고 싶어.


금주 수업을 들었어. 총 네 번 듣는데 이번 수업에서는 자신의 음주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 심각하데...


오늘따라 또 엄청 우울해. 적응하기가 어려워. 토끼 동생이랑 친한 동생들한테 물어보니까 다들 처음에는 그랬데. 그래도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더라. 불안한 게 싫은데 또 불안해져. 주말에는 할 게 더 없을 텐데 큰일이야. 잘 자. 내 꿈 꿔.


12월 18일


내가 어제 결국 또 자해를 했고 나 자신을 탓했어. 탓하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라서 탓하는 건 그만뒀어. 오빠가 화난 거 같긴 해. 미안해 다음에는 내 몸이 아니라 생각하고 참아보도록 할게.


폐쇄에서 전화가 왔어. 다음 주에 넘어오는 사람들이 있다네. 다행이야. 근데 사실 또 인싸력이 발동돼서 개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랑도 친해졌어. 불안한 게 가라앉았어.


오빠는 스파이더맨을 봤다고 했어. 우린 아직 영화도 같이 못 봤더라. 나가면 손잡고 영화 보자.


큰고모가 간식거리를 한 보따리 사 왔어. 더블 치즈 버거까지... 식었을 때 먹었는데도 최근에 먹은 햄버거 중에 제일 맛있었어.


눈이 왔어. 올해 첫눈인데 직접 맞지 못하다니... 오빠가 아쉬워하는 나에게 사진도 보내주고 첫눈 아니라고 첫눈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맞는 게 첫눈이라고 해줘서 고마웠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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