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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an 02. 2022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14


12월 30일


오늘은 남 얘기 말고 내 얘기를 좀 해볼게. 내가 세상 쓸모없는 사람처럼 한심하게 느껴지더라고. 뉴스 채널 볼 때 더 심해. 남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나는 갇혀서 한 달째 치료받느라 일도 못하고. 뒤쳐지는 것 같아. 돌아가서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나는 우리 회사 사람들이야 뭐 내가 병가 낸 걸 알 수밖에 없으니까 별생각 없었는데 좋은 의도였든 나쁜 의도였든 내가 병가 낸 걸 타사 사람들이 안다는 게 결국 우리 선후배들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일 텐데 섭섭하더라. 나는 이게 가십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랬어.


그러고 나니 너무 억울한 거야. 왜 나만 마음이 아픈 건지. 나는 열심히만 살았는데 왜! 아직도 사실 내가 아픈 걸 인정을 못하겠어. 그냥 억울하고 또 억울해. 백혈구 수치가 안 돌아오고 있데. 이번 주 말은 물 건너간 거 같고 다음 주 초라도 퇴원하길... 제발! 보고 싶다.


12월 31일


어제 느꼈던 모든 감정들 의사 선생님한테 이야기했더니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미래에 대한 걱정 근심은 잠시 내려놓고 제3자 입장에서 멀리 떨어져서 현재에 충실해 보래. 애쓰고 있는 나 자신을 다독여주래. 펑펑 울었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해 주겠어.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닐 때가 더 많을 거라는 거야. 맞아 사실 그럴지도 몰라.


나무늘보 오빠가 퇴원했어. 편지 주고 갔는데 편지에 내 경조사 다 참석하겠다고 약속했어.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병원에서 올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다니 이 기분은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야. 간호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새해에는 아프지 않을 거라고. 근데 그건 새해고 난 그거까진 모르겠고 오늘은 기분이 더럽다. 우울하다 못해 더러워. 오늘이 통째로 사라졌으면 좋겠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크리스마스에도 그랬지만 올해의 마지막 날에도 여기는 더 대환장 파티야. 다들 자살, 자해 시도하고... 오늘 몇 명이 삶을 등지려 했는지 알아? 하나님이 계시다면 여기 불쌍한 영혼들을 어루만져 주시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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