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지켰던 영상 보도 가이드라인과 한국에서 지키고 있는 영상 보도 가이드라인을 비교해 달라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죄송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집을 부려 거절한 이유는 부끄럽지만 개인적으로 충분히 고민해 보지 않았던 내용이고 중요한 내용을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충분히 고민해 보지 않고 미루고 미뤘던 이유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단 홍콩에서는 내신 소속이 아니었고 미국과 프랑스 외신 소속이었다. 내신과 외신이 다루는 일에 차이가 있어서 내가 경험한 홍콩 취재 현장이 홍콩 취재 현장의 전부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홍콩은 여러 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세상 애매한 중국의 특별 행정구이고 미국과 프랑스는 서양 나라들이다. 게다가 2년 밖에 안되는 경력을 가지고 한국 내신에서 다시 시작했다. 인터뷰 요청을 받고 반나절만에 비교를 해내기에 그렇게 간단한 비교 대상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거절한 후 요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는 인터뷰 질문들이 계속 맴돌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늦었지만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았다. 그래서 정리한 내용을 이렇게나마 공유해보려 한다.
영상 보도 가이드라인에 관한 사항 중 제일 크게 다른 점은 공공장소에서의 초상권에 대한 접근인 것 같다.
초상권은 인격권의 내용의 한 부분인데 여기서 인격권이란 권리의 주체와 분리가 불가능한 생명, 신체, 자유, 명예, 성명 등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권리이다. 그중에서 초상권이란 자기의 초상이 허가 없이 촬영되거나 또는 공표되지 않을 권리이다.
영상기자는 거리, 공원, 경기장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일반인을 촬영, 보도해도 되는가?
우리는 개개인의 인격권 보호에 대한 논의가 점점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인격권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사실 인간이 가진 가장 존엄한 권리이다. 하지만 홍콩에서의 미국, 프랑스 외신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외신도, 그니까 외신은, 공공장소에서의 초상권을 접근하는 데에 있어서 한국 내신보다 덜 예민하다. 초상권을 접근하는 데에 있어서 쟁점이 되는 촬영되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프라이버시를 기대할 수 있는 정도'에 대한 해석을 다른 강도로 하기 때문이다.
외신은 '프라이버시를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기준을 높게 잡고 공공장소에 나와 있는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적정한 프라이버시가 기대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공공장소에서는 어차피 누구에게나 개개인의 모습이 다 공개되니 말이다. 일반인들에게 적정한 프라이버시가 기대되는 장소는 본인의 집이나 화장실, 탈의실과 같은 공간으로 판단한다. 사유지가 아닌 공공장소에서는 초상 촬영 및 공표가 허용된다고 판단한다. 표현의 자유를, 그리하여 기자가 기록하는 행위를, 더 중요하게 해석한다. 물론 악의적으로 비도덕적으로 영상을 이용한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자에게 한에서만 특별한 권리가 주어지는 건 아니고 일반인들에게도 공공장소에서는 똑같이 초상 촬영 및 공표가 허용된다. 그래서 덜 예민하다. 촬영 도중 촬영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촬영하지 않는다.
근데 유독 한국 문화와 정서 때문인지 한국 내신은 '프라이버시를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기준을 낮게 잡고 공공장소에 나와 있는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적정한 프라이버시가 기대된다고 판단한다. 공공장소에서도 초상 촬영 및 공표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더 예민하다. 거리, 공원, 경기장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일반인을 찍을 때, 특정인을 부각해서 촬영하지 않아야 한다고, 긍정적 뉴스, 혹은 날씨와 교통과 같은 내용을 담은 가치중립적 뉴스의 경우에도 가능한 그룹샷이나 풀 샷을 촬영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뉴스에서 머리 잘린 사람들을 많이 본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온전하지 않은 모습으로 촬영 및 공표되는 건 다른 의미에서 초상권을 침해받은 건 아닐까?
한 나라의 문화와 정서, 법체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에 무엇이 맞다, 틀리다에 대한 답은 내릴 수 없다. 한국에는 공공장소에서의 초상권 침해 조정 사례들이 많다는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