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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n 01. 2022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2-1

5월 31일


아빠, 엄마. 재입원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더하던 와중에 어제 병실 자리가 하나 났다는 전화를 받고 결국 오늘 재입원을 했네. 다들 많이 힘들었을 거야. 내가 성질도 많이 부리고 화도 많이 냈잖아. 그래서 재입원을 결심한 것도 있어.


이번에는 처음부터 개방 병동으로 왔어. 저번에는 긴장되고 낯설고 무서워서 모든 걸 경계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한 번 왔던 데라고 세상 편하네. 심지어 저번 입원 때 만나서 친해진 친구들 중에 둘이나 재입원을 하고 있어서 다시 만났어. 말이 좀 이상하지만, 집에 온 느낌이었어.


이사 왔어?


간호사 선생님이 짐 푸르는 걸 도와주셨어. 이젠 뭐가 반입이 되고 뭐가 안 되는지 너무 잘 알아서 뺏긴 건 하나도 없어.


그래도 간호사 선생님이랑 담당의 선생님이랑 각각 면담을 할 때는 그만 울 법도 한데 또 울었어. 머리가 아팠어. 저번 담당의 선생님은 다른 병원으로 가셨데. 이번 담당의 선생님은 지난 주인가 지 지난주인가 응급실에서 한 번 뵌 분이셨어. 한 번 밖에 뵙지 못했지만 그때 되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그분이 이번 담당의 선생님이라 다행인 것 같아.


담당의 선생님께 말했어. 물론 현재의 이런 크고 작은 외부적 자극들이 조울증과 공황장애를 키운 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뿌리를 뽑고 싶고 그 뿌리는 과거에 있는 것 같다고. 과거를 놓지 못해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이라고. 모든 일을 자책하고, 자책할 일이 더 생길까 봐 늘 불안해하고.


선생님께서 내가 많이 자책하는 건 응급실에서 말했듯이 내가 따뜻함과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어서라고 하셨어. 다만 그게 나를 갉아먹게 두지 말라고. 남도 소중하지만 내가 더 소중하다고 하셨어.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라고 하셨어.


언제까지 네 문제 속에서 방황할 거니? 네 문제가 뭐지? 문제가 맞긴 해? 그 문제를 끌어안고 평생 이곳에 있을 거야?
- <처음 만나는 자유>


의사 선생님께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문제가 맞긴 했었는지 제3자 입장에서 멀리 떨어져서 살펴볼 시간을 가져야 할거 같다고 하셨어. 대신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야 한다고 하셨어. 살펴봐야 할 시간이 긴 만큼 조급해 하지 말라고 하셨어. 너무 힘들겠다 싶으면 무시하고 살래.


기억하래. 너의 욕심은 과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아니라고 말해줘야 할 거 같았다고 하셨어. 너의 욕심이 백번 과했다고 쳐도 그 욕심 때문에 너의 가정에 네가 말하는 그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끝까지 그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내가 죄책감을 안 느끼는 게 이번 입원의 목표라고 하니까 이미 느끼고 있는 죄책감을 안 느끼 게 할 수는 없고 긍정 회로를 돌려서 죄책감을 선한 영향력으로 바꿀 수는 없을지 고민하고 노력해 보자고 하셨어. 기부나 봉사라든지.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가족들한테 갚는다든지 말이야.


나는 몰랐는데 내가 ‘그런데’라는 말을 많이 쓴데. ‘그런데’라는 말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노력해 보래. "그런데 제가 제 동생 몫을 많이 빼앗은 거 같아요,"가 아니라 "동생이 자기 몫을 많이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열심히 해내서 훌륭하게 성장했어요. 저는 그런 동생이 자랑스러워요." 이렇게.


그리고 제일 강조하셨던 건 쉬라고, 제발 쉬라고. 쳇바퀴 돌듯이 너무 열심히 살았다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어.


병원 밥은 역시나 맛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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