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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ug 04. 2022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2-9

6월 11일


아빠, 엄마. 아침에 이유 없이 막 화가 나서 다 부숴버리고 싶었어. 충동이 너무 쎄져서 결국 일 치르기 전에 추가 약 먹고 독방에 강박해달라고 했어. 안정제도 놔주더라. 자고 일어나니까 이상하게 화가 다 사라졌어. 왜 이렇게 화가 많아졌을까?


담당의 선생님은 조울증의 증상이라며 그럴 수 있다고 했는데 나 진짜 모르는 사람 때렸다가 경찰서 가는 꿈을 자주 꿔. 독방에서도 막 소리 지르고 물건 다 던지고… 저번에 다음 주 월, 화, 수 중에 개방으로 가자는 얘기가 나왔긴 했는데 아직 기분이 오락가락해서 그냥 폐쇄에 남을 것 같아. 뭐 폐쇄도 나쁘지 않아서 선생님 결정을 따르려고.


엄마랑 오해 아닌 오해를 풀어서 마음이 편해졌어. 엄마가 짐을 바리바리 싸왔어. 내가 먹고 싶은 걸 다 써놨는데 다 싸왔더라구. 무거웠을 텐데… 내가 생각이 짧았어. 이젠 그렇게 많이는 부탁 안 할게. 고생 너무 많이 했어. 폐쇄라 얼굴도 못 보는데… 그래도 감사합니다. 햄버거 완전 존맛!


6월 12일


아빠, 엄마. 주말에는 면담이 없는데 담당의 선생님이 아침에 와주셨어. 제가 왜 그랬을까요 물었더니 왜는 중요치 않다고 하셨어. 그냥 어제는 안 좋았지만 오늘은 좋을 수도 있는 거니까. 감정은 바뀌는 거래.


일에 대해서 조언을 구했는데 결국은 나의 선택이고 사실 결정하면 둘 중에 뭐가 나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래. 대신 어떤 결과에도 긍정적이게 마주하자고 하셨어.


나 오늘 독방에 두 번 갇혔어. 강박도 당했어. 기분이 계속 오락가락 하니까 속상하고 힘들다. 담당의 선생님이 저녁에 또 와주셨어. 괜찮냐고. 무서웠다고 하니까. ‘무서웠겠다. 미안해. 근데 너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어’ 라고 하셨어.


6월 13일


아빠, 엄마. 아침에 자해 충동이 엄청 컸는데 싸이클링 하니까 좀 나아져서 추가 약 안 먹었어. 칭찬해 주셨어. 화가 많아진 것도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그리고 좀 이상하면 어쩔 거냐고. 잘 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잘 사는 것보다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어. 그렇게 대충 살다 보면 의미가 생길 거라고. 나한테는 분명 그럴만한 힘이 있다고. 선생님의 목표는 단 한 가지래. 내가 죽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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