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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ug 05. 2022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2-10

6월 14일


아빠, 엄마. 아침에 일 치르기 전에 추가 약 먹고 독방에 강박해달라고 했어. 오늘은 애들이 전체적으로 다 아파. 나비 동생도 토끼 동생도.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고 쓰러질 것 같데. 근데 나 결국 자해를 했어. 개방 못 가게 됐지만 뭐 언젠가는 가겠지. 나비 동생은 여자고 24살이야. 키도 크고 날씬하고 이뻐. 매력덩어리야. 내가 좋데. 나도 좋아. 같이 있으면 재밌어.


담당의 선생님이 자해 왜 했냐고 물어보시길래 충동이 쎄서요 라고 했더니 그래서 하고 나서 충동이 줄었냐고 어떤 감정을 느꼈나고 물어보시길래 원래는 항상 쪽팔리고 괴롭다고 했는데 오늘은 시원하다고 했어. 난 나를 증오한다고 했더니 자신을 증오한다고 다 죽으려고 하지는 않는다며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보라고. 노력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도 되니까 그냥 살라고. 담당의 선생님이 7분짜리 명상 소리를 녹음해 주셨어. 힘들 때 들으라고. 감동받았어.


6월 15일


아빠, 엄마. 오늘은 너무 괴로웠어. 간호사 선생님이랑 트러블이 있었어. 마치 내가 월권이라도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구. 최근 세 가지 일이 있었는데 다 나보고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저희는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등등… 내가 ‘선생님 이렇게 저렇게 하세요’ 이런 것도 아니고 굳이 기분 나쁘게 말해야 되나. 나는 그냥 침대에서 못 일어날 만큼 아파하는 애들 도와주려고 대신 ‘많이 아프데요’ 전달해 준 게 끝인데…


엄마가 짐을 바리바리 싸왔어. 떡볶이 완전 존맛! 반찬도 넣어줬더라? 그거 때문에 밥을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어.


6월 16일


아빠, 엄마. 담당의 선생님이 그러셨어. 오해가 있었던 것 같고 인간관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자책하지 말라고.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나 어제 울분을 못 참고 짐까지 다 싸고 나가겠다고 했거든. 담당의 선생님이 아직 보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셔서 짐 다시 풀었어. 담당의 선생님이 이런 상황에도 고민과 상상을 멈추고 팩트만 보자 아니 그것도 힘들면 아무것도 보지 말자라고 하셨어.


앵무새 할머니가 빈자리에 들어오셨는데 처음에는 예의 갖추고 다 들어드렸는데 하루에도 거의 백 번씩 간호사 스테이션 들락날락하시면서 약이 어쩌구저쩌구 난동 부리고 병실 안에서도 쌍욕하고 그래서 충동이 너무 쎄져서 일 치르기 전에 추가 약 먹고 독방에 넣어달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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