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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ug 06. 2022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2-11

6월 17일


아빠, 엄마. 오늘따라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어. 오늘은 기분이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담당의 선생님이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있지만 기분이 좋을 때도 있다는 걸 또 경험한 거라고. 내가 똑똑하니까 나가서도 잘 컨트롤해서 살 만큼 할 수 있다고, 진짜 할 수 있다고. 날 믿으신데. 물론 약으로도 힘들 때가 있겠지. 근데 안정제까지 맞으면 습관 된다고 맞기 전에 그것도 운동하고 나서 약 먹고 보고 놔주셔. 운동하면서 충동 버티다가 약 먹었는데 안정제 안 놔주셨어. 이제는 운동으로 버티는 연습을 하고 있어.


자기혐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담당의 선생님이 나는 잘 하는 게 많으니 그걸 장점으로 삼고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살라고 하셨어. 내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맛볼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다면 그것마저 감사하라고.


충동이 쎄져서 결국 일 치르기 전에 추가 약 먹고 독방에 강박해달라고 했어. 안정제도 놔주더라. 살고자 하는 마음과 죽고자 하는 마음이 많이 충돌하는 것 같다고 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간호사 선생님이 ‘많이 힘들지? 좀만 더 힘 내줘요’라고 하셔서 그 말에 펑펑 울었어. 울어도 된다고.


오늘은 알파카 동생에 대해 말해줄게. 알파카 동생은 여자고 16살이야. 알파카 동생 마음이 아픈 게 태어났을 때부터 아파서 병원에서 살았데. 자가면역 체제가 무너져서 심장도 폐도 뇌도 아프데. 그 와중에 가정폭력까지… 그래서 아무것도 두렵지 않데. 자해를 거의 뼈가 보일 때까지 해.


6월 18일


아빠, 엄마. ‘오늘은 또 새로운 하루니까’라는 생각에 중간중간 추가 약을 먹긴 했지만 버틸 데로 버텼어. 컨트롤할 수 있는 느낌이야.


그리고 자기 수용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담당의 선생님이 자기혐오를 줄이기 위해서 자기수용이 필요하데.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라고. 아픈 것도, 내 성격, 말, 행동, 장점도 단점도 다 인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보래. 다행히 많이 인지를 하고 있어서 연습만 잘하면 될 것 같다고 하셨어.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하려고 하는 게 이상한 거라고. 특히 아픈 걸 인정할 때 너무 어렵겠지만 ‘나는 아픈 사람이지만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 산다’, ‘삶의 가치를 어쩌면 남들보다 더 잘 알고 있고 다른 아픈 사람들도 더 이해해 줄 수 있다’라고 생각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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