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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ug 10. 2022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2-13

6월 20일


아빠, 엄마. 오늘 오전에 나비 동생이 개방으로 넘어갔어. 이별에 많이 둔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많이 울었어. 동생인데 친구처럼 지낼 만큼 가까웠고 좋을 땐 같이 좋아해 주고 힘들 땐 같이 힘들어해줄 수 있는 존재였는데…


담당의 선생님이랑 자해에 대해 얘기를 했어. 자해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자신을 해치는 건 위험하기 때문에 내가 먹는 약 중에 뇌의 호르몬을 다른 쪽으로 보내서 충동을 줄일 수 있는 약이 들어가 있데. 여기서 중요한 건 사실 본인이 충동을 줄일 수 있는 스킬들을 사용하는 거래.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싸울 때 ‘아, 엄마가 화났구나’, ‘동생이 짜증 났구나’ 거기까지만 생각하래. ‘엄마랑 동생이 날 싫어하나’까지 생각하지 말래. 그리고 엄마랑 동생도 내가 아프면서 힘들어졌을 수 있다고 하셨어. 우울증 초기라면 다 치료받는 걸 권장한데. 근데 그거에 대해 자책하지 말래.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할 거 같데.


점점 해가 길어지네. 여름이 오려나봐. 사랑해 다들.


6월 21일


아빠, 엄마. 나비 동생이 간호사 스테이션 반대편에서 계속 울고 있는 거야. 마음이 아팠어. 적응하기가 힘들데. 자해를 해서라도 개방에서 보호로 넘어오고 싶데. 보고 싶긴 하지만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했어. 그랬더니 담당의 선생님이 그럴  광활하고 푸른 언덕에 누워 하늘을 보는 상상을 해보래. 그럼  진정될 거라고. 담당의 선생님이 보시기에 내가 너무 조급하데. 완치가 목표가 아니라 무드 사이클의 높은 지점과 낮은 지점은 점점 좁게 그리고  중간은 길게 우지함으로써 내가 사는 것이 목표래. 10 넘게 아팠는데 그게 금방 치료가 되겠냐고.


오늘은 하마 오빠에 대해 말해줄게. 하마 오빠는 키가 188이야. 엄청 커. 프로그래밍을 한데. 하마 오빠는 친누나가 자살을 했데. 그 후에 환청이 들린다는데 괴롭데. 다들 안 아팠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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