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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ug 14. 2022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2-15

6월 24일


아빠, 엄마. 오늘은 그림 그리기를 했어. 그려서 담당의 선생님한테 드렸어. 좋아하셨어. 내가 일기장에 써놓은 말 중에 진심으로 기억하고 싶은 말들을 다시 따로 써놨거든. 보여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어.


요즘 제일 행복할 때는 소파에서 잘 때 알파카 동생이 소등할 때까지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 때야. 근데 오늘은 알파카 동생한테 안 좋은 일이 있었어. 부모님께서 집에 돌아오면 죽여버린다고 했데.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교수님들도 걱정이 많으신 거 같아.


6월 25일


아빠, 엄마. 하마 오빠가 개방으로 넘어갔어. 하마 오빠가 평소에 많이 챙겨줘서 정이 많이 들었는데 아쉬웠어. 그래서 울었어. 하마 오빠가 울지 말라고 안아줬어.


담당의 선생님이랑 얘기를 했는데 과거와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해 보래. 아빠도 엄마도 많이 말했던 거잖아. 오늘은 저녁으로 치킨을 먹었어. 책갈피가 없어져 책갈피를 다시 만들었어. 하도 심심하니까 별 걸 다한다.


마스크 모양 잡아주는 철사를 빼서 자해를 했어. 개방 못 갈 것 같아.


6월 26일


아빠, 엄마. 아침부터 두 번이나 넘어져서 뇌 CT 찍고 쇼했어. 계속 비틀비틀거려. 몸에 힘이 없어.


또 자해를 했어. 여기 계시는 아줌마들이 나보고 너가 겪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빠, 엄마한테 대못 박는 거라고 그런 불효녀가 어딨냐고 하셔서 너무 슬펐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이나 봐. 그래도 막말하지는 말지… 담당의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었어.


6월 27일


아빠, 엄마. 담당의 선생님이 내가 보자마자 막 우니까 내 잘못 하나도 없지만 사회에 나가면 그런 사람 널리고 널린 거 알지 않냐고. 그걸 자해로 해결하려 하면 안 된다고. 그건 마치 5살짜리 애한테 아이스크림을 뺏기고 자해를 하는 거랑 다를게 없다고. 그런 막말을 들어도 잘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중심을 잡고 단단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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