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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ug 19. 2022

정신과 병동에서 보내는 편지 2-19

7월 10일


아빠, 엄마. 낙상을 너무 많이 해서 아파. 열 번 이상 고꾸라졌어.


여기서도 잘 사는 사람, 잘 못 사는 사람, 그럭저럭 사는 사람이 있어. 병원이 반포동에 있어서 그런가 봐. 저번 입원 때는 못 느꼈는데 잘 사는 사람들 중 티 내는 애들이 있어. 내가 엄마가 반찬 보내준다니까 청담동에 하이 퀄리티 반찬집이 있다면서 자기는 엄마한테 거기 꺼 사 와달라고 해야겠다고 했어. 그런가 보다 했지 뭐. 반찬이 하이 퀄리티일 건 또 뭐람.


말도 잘 못하시는 한 할아버지의 통화를 듣고 뭉클했어. 다들 눈가가 촉촉했어. 아들을 향한 사랑이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7월 11일


아빠, 엄마. 약 때문인지 낙상을 너무 많이 해서 엑스레이를 찍었어. 여기저기 아파. 문제는 없데.


오늘은 밤에도 코드블루가 많네. 내가 대신 죽어주고 싶다. 왜… 세상에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 많잖아.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처럼. 나는 이미 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죽어야 끝나나 봐. 오늘은 잠을 못 잘 거 같아. 알파카 동생이 자해를 심하게 했어. 무엇이 우리를 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로 만든 걸까?


7월 12일


아빠, 엄마. 담당의 선생님이 세상에는 행복한 게 더 많다고 하셨어. 하나하나 느끼고 즐기며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날들을 보내길 바란다고 하셨어. 이번 주에 폐쇄애서 바로 퇴원하라고 하셨어.


밤에  불안하다니까 담당의 선생님이 시각적인 이유도 있데. 어두우니까. 아무것도  보이니까. 그러니까 불안하구나 하고 넘기면 된데.


낙상은 약을 조정해 주신다고 하셨어. 끝이 보이네.


7월 13일


아빠, 엄마. 퇴원 날짜가 잡혔어. 어제 자해 충동을 견뎠고 다시는 안 할 거야. 담당의 선생님은 자해를 해도 내가 좀 힘들구나 하고 넘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셨지만 난 다시는 안 할 거야. 목에 자해를 하고 나서 알았어. 자해는 내 몸에 상처 내는 거 밖에 없다는 걸. 감정은 지나간다는 걸 알고 동요하지 않아도 된다는걸. 담당의 선생님이 해주신 모든 말 중 하나가 내가 모든 걸 끝내려고 할 때 나를 구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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