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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Nov 09. 2022

영상취재부 장비 실장이 된 후

KBS로 떠난 선배가 영취부 장비 실장이었다. 그 일을 나랑 내 동기한테 넘겨주셨고 그렇게 우리는 장비에 관한 모든 일을 하게 되었고 사수 선배가 생겼다.


사수 선배는 처음부터 장비실을 뒤집어엎으셨다. 전체적으로 우리한테 있는 장비들이 무엇이, 몇 개 있는지, 고장 난 건 고장 난 거대로, 쓸 수 있는 건 쓸 수 있는 거대로 파악 됐다. 생각보다 되게 사소한 장비들도 많았다. 며칠 힘들었지만 하고 나니 뿌듯했다.


우리는 ENG는 소니 PMW-500 과 소니 PXW-Z750을 사용하고 있고 6미리는 소니 PXW-Z280을 사용하고 있다. 분명 개인장비 시리얼 넘버가 정리되어 있었는데 뭐 중간에 바뀌고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재정리를 해야 했다. 며칠 힘들었지만 하고 나니 뿌듯했다.


수리처랑 구입처도 재정리를 했다. 누구라도 뭐를 수리해야 하거나 구입해야 할 때 스스로 혼자서 전화를 하고 견적서를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연락처를 다 저장하고 연락을 돌렸다. 약간 영업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리 요청서, 구입 요청서, 협조전 등 파일들도 종류별로 재정리를 했다. 누구라도 뭐를 수리해야 하거나 구입해야 할 때 스스로 혼자서 문서를 작성하고 결재를 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며칠 힘들었지만 하고 나니 뿌듯했다. 아, 여기서 재밌는 거 하나, 나는 ‘결재’가 아닌 ‘결제’인 줄 알았다.


수리와 구매를 동기랑 나랑 나눴는데 사실 취재 일정도 커버하면서 하는 일이라 서로 도와야 할 때가 많아서 도와가며 하고 있다. 장비에 관한 일을 하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늘었다. 아무래도 일이 늘었으니까. 사수 선배가 갈구라고 했던 게 이해가 안 갔는데 안 갈구려고 해도 갈굴 수밖에 없게 됐다. 진짜 뭐 고장 내 오면 선배든, 후배든 짜증이 난다. 내 동기도, 나도 짜증 내는 성격이 아닌데 짜증 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게 그렇게 웃겼다.


처음에는 사수 선배한테 보고 문제로 많이 혼나기도 했다. 지금이야 시간이 지나고 다 이해가 가지만 그때는 뭐가 맞고 틀린 지 하나도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생각보다 일이 진짜 많다. 떠난 선배는 혼자 하셨는데 어떻게 혼자 하셨는지 이해가 안 간다. 특히 우리 6미리 고질병이 줌레버 고장이랑 백 핀 나가는 현상인데 이제는 너무 자주 발생해서 여덟 대를 한 번에 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남는 카메라가 없기 때문에 사수 선배 지시하에 우선순위대로 몇 대 맡기고 뭐 옛날 카메라 두 대 쓰고 야근자, 야퇴자거 돌려쓰고 그런 식으로 처리했다. 사수 선배가 안 계셨다면 어후 그건 생각도 하기 싫다.


신기하게도 장비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내가 어느 업체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었다고 브로슈어를 보내오면 궁금해서 보게 되고 타사는 뭐 쓰는지 살피고, 좋은지, 안 좋은지 물어보게 되고 그런다. 배우는 게 확실히 많아졌다.


그래도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다ㅋㅋㅋㅋ 얼마 전에 떠난 선배한테 전화해서 왜 넘기고 갔냐고 울면서 따졌다. 부서에서 목소리를 더 낼 수 있었으면 해서 넘긴 거라고 깊은 뜻을 전해오셨지만 신경 쓰이고 머리 아프고 힘들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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