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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Oct 10. 2022

나를 속여서라도

끔찍하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근데 나는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 부캐가 유행인 요즘 나도 밝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부캐를 만들었나 보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일찍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말하는 것 중에 안 힘들만한 게 하나도 없다고. 아니라고, 끝까지 아니라고 했다. 정말 안 힘들다고.


취재 중 옛 후배를 만났다. 괜찮냐는 말 한마디에 펑펑 울었다. 나 힘들구나. 그랬구나.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지했을 땐 (예전의 나라면 그렇게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했다. 항상 솔직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했다.


선배들이 이제 나를 싫어하시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병에 대해 잘 모르실뿐더러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생, 고생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게 된 것 같다. 여기저기서 이쁨만 받았는데 이제는 어느 자리에도 끼워주지 않으신다. 인사도 잘 안 받아 주신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게 불편하다. 그래도 그만두기 싫으면 버텨야 된다. 그래서 장비실, 탕비실, 숙직실, 화장실, 녹음 부스 이런데 숨어있는다. 병실보다 백배 낫다. 숨어 있는 이유는 시간이 약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상처를 안 받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상처는 상처다.


자살시도도 참고 자해도 참고 사람들의 시선도 참고 참아야 되는 게 너무 많다. 그래도 버티고 있다. 잘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내가 또 다른 골목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걸까?


너무 많은 걸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사소한 목표를 하나하나 만들어 가자는 의사선생님께 저 중에서 하나라도 놓칠 수 있는 게 있냐고 그냥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라는 말이랑 뭐가 다르냐고 따져 물었다. 내가 자살할 가능성이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시는지도. 환자들을 많이 봐 오셨을 테니 어느 정도 알고 계시지 않냐고. 단정 지어 말해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악물고 버티는 거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 사소한 목표? 그딴 건 없다. 나는 지금 오징어게임을 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비 오는 날이었다. 의사선생님께서 울면서 비 맞고 가지 말고 선생님 우산을 가져가라고 챙겨주셨다.


귀신이 들렸나 싶을 정도로 다 죽여버리고 싶다. 싸이코 같나? 싸이코 같다. 기자가 싸이코라니.


안그래도 살이 급격히 빠졌는데 밥도 먹기 싫다. 밥도 안 먹고 운동만 하니 살만 더 빠지고 있다. 나를 2개월 본 풋살 선생님은 눈치를 못 채셨지만 나를 7개월 봐 온 필라테스 선생님은 눈치를 채셨다. 요즘 밥 안 먹냐고 물으셨다.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고. 밥도 먹기 싫을 정도로 힘든 건 알겠는데 프로틴 음료라도 마시라며 프로틴 음료를 주셨다. 처음 마셔봤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프로틴 음료를 한 박스 주문했다. 프로틴 음료로 살아가고 있다. 식욕을 돋우는 약을 추가했었는데 배고픔을 못 느끼다가 배고픔을 느끼는데도 견뎌서 굶는 나를 보고 의사선생님께서 다시 빼셨다. 그게 날 더 괴롭게 할 것 같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문득 그 곁으로 갈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을 하던 중 할머니는 천국에 계실 테니 나는 할머니를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옥 불에나 떨어지지 않을까?


근데 진짜 당장 자살할 마음은 없다. 믿어줬으면 좋겠다.


아픈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싶었는데 이건 아픈 이야기가 아니라 생존기다. 처절한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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