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근데 나는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 부캐가 유행인 요즘 나도 밝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부캐를 만들었나 보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일찍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말하는 것 중에 안 힘들만한 게 하나도 없다고. 아니라고, 끝까지 아니라고 했다. 정말 안 힘들다고.
취재 중 옛 후배를 만났다. 괜찮냐는 말 한마디에 펑펑 울었다. 나 힘들구나. 그랬구나.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지했을 땐 (예전의 나라면 그렇게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했다. 항상 솔직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했다.
선배들이 이제 나를 싫어하시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병에 대해 잘 모르실뿐더러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생, 고생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게 된 것 같다. 여기저기서 이쁨만 받았는데 이제는 어느 자리에도 끼워주지 않으신다. 인사도 잘 안 받아 주신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게 불편하다. 그래도 그만두기 싫으면 버텨야 된다. 그래서 장비실, 탕비실, 숙직실, 화장실, 녹음 부스 이런데 숨어있는다. 병실보다 백배 낫다. 숨어 있는 이유는 시간이 약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상처를 안 받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상처는 상처다.
자살시도도 참고 자해도 참고 사람들의 시선도 참고 참아야 되는 게 너무 많다. 그래도 버티고 있다. 잘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내가 또 다른 골목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걸까?
너무 많은 걸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사소한 목표를 하나하나 만들어 가자는 의사선생님께 저 중에서 하나라도 놓칠 수 있는 게 있냐고 그냥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라는 말이랑 뭐가 다르냐고 따져 물었다. 내가 자살할 가능성이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시는지도. 환자들을 많이 봐 오셨을 테니 어느 정도 알고 계시지 않냐고. 단정 지어 말해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악물고 버티는 거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 사소한 목표? 그딴 건 없다. 나는 지금 오징어게임을 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비 오는 날이었다. 의사선생님께서 울면서 비 맞고 가지 말고 선생님 우산을 가져가라고 챙겨주셨다.
귀신이 들렸나 싶을 정도로 다 죽여버리고 싶다. 싸이코 같나? 싸이코 같다. 기자가 싸이코라니.
안그래도 살이 급격히 빠졌는데 밥도 먹기 싫다. 밥도 안 먹고 운동만 하니 살만 더 빠지고 있다. 나를 2개월 본 풋살 선생님은 눈치를 못 채셨지만 나를 7개월 봐 온 필라테스 선생님은 눈치를 채셨다. 요즘 밥 안 먹냐고 물으셨다.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고. 밥도 먹기 싫을 정도로 힘든 건 알겠는데 프로틴 음료라도 마시라며 프로틴 음료를 주셨다. 처음 마셔봤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프로틴 음료를 한 박스 주문했다. 프로틴 음료로 살아가고 있다. 식욕을 돋우는 약을 추가했었는데 배고픔을 못 느끼다가 배고픔을 느끼는데도 견뎌서 굶는 나를 보고 의사선생님께서 다시 빼셨다. 그게 날 더 괴롭게 할 것 같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문득 그 곁으로 갈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을 하던 중 할머니는 천국에 계실 테니 나는 할머니를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옥 불에나 떨어지지 않을까?
근데 진짜 당장 자살할 마음은 없다. 믿어줬으면 좋겠다.
아픈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싶었는데 이건 아픈 이야기가 아니라 생존기다. 처절한 생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