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을 굳혀가고 있었다. 12월 말에 말씀드리고 1월 말까지만 다니려고 했다. 그런데 결국 그만두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도 못한다면 더 절망에 빠질 것 같았다. 잘 할 수 없어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결국 그만두지 못했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
버티는 삶이 시작됐다. 어쩌면 회사가 아닌 병원에 가야 할 내가 또 엉망인 채로 그렇게 버티는 삶을 산다.
자해를 시드 때도 없이 한다. 불안해도 그으면 안 되는데 그을 칼이 없으면 더 불안하다. 나를 증오한다. 나를 사랑하는 법? 사랑할 만한 사람이어야 사랑하지.
나도 참 노답이다. 그냥 너무 벅차서 며칠 동안 무단결근을 하고 있다. 중간중간 연락은 드리고 있지만 선을 많이 넘었다. 딱히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될 대로 되라지 식이다. 왜 이럴까. 나 진짜 왜 이럴까.
돌아가면 더 힘들어질 텐데. 알면서 왜 이럴까. 눈물이 나고 이미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계속 잠만 자고 싶다. 잠에서 깨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떨치려고 해 봐도 완전히 잠식되는 순간 우울함은 내 삶의 전부가 되고 다른 말로는 날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래도 나름 행복한 척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행복한 척마저 더 이상 할 수 없다. 혼자 남겨진 기분에 외롭다는 말로는 다 할 수 없을 만큼 외롭다. 들키기 싫어 숨는다.
문제는 나라는 걸 안다. 난 뭔가 잘못됐고 그 사실이 나를 지치게 한다. 지긋지긋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온통 어둠뿐이고 존재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무의 세계로 가라앉고 싶다. 아무도 날 찾지 않고 웃거나 말하거나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곳.
어쨌거나 익숙하다. 전에도 겪어봤고 벗어난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벗어나는 과정은 기억 속에 어렴풋이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약 잘 먹고 치료 잘 받는 게 맞는데 아무것도 안 한다. 나아진다고? 안 나아진다고. 그래서 거부한다.
의사선생님께서 강남에 개원하시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역시 신은 내 편이 아니다. 나는 이제 또 다른 의사선생님께 내 아픔을 꺼내야 한다. 그게 정 힘들면 언제든지 자기에게 와도 된다고 하셨다. 싫다. 다 싫다. 어차피 아무도,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만 아플 수 있다면 제발 그만 아프고 싶다. 죽어야 끝나는 거라면 진심으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