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의 끝자락. 서른이 되기 일주일 전이다.
나의 10대와 20대는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성장하고, 그렇게 성장한 어른 아이는 사실 어른보다는 아이에 훨씬 가까웠는데 다른 어른들에게 주어진 것보다도 더 많은 책임에 쩔쩔매고 허덕거렸다. 제일 마음 아픈 건 그 화살을 다시 나에게로 돌렸다는 것. 자해와 자살시도를 하며 나를 위험에 들게 했다는 것.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니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고, 그럴 수만 있다면, 그때의 나를 그냥 좀 오랫동안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괜찮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행히 두 번의 입원 치료와 꾸준한 통원 치료, 약물 복용으로 나는 많이 좋아졌다. 나는 나를 알고, 나를 믿고, 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많이 불안해하지도, 울 때도 있지만 잠깐 울고 털어내지 많이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그런 걸 보면 나는 분명 많이 좋아졌다. 입원 당시 주치의 선생님, 담당의 선생님, 그리고 나를 주기적으로 봐주시는 의사선생님까지, 그 화살을 다시 누군가에게 돌리자는 게 아니라 상황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내가 분리되어야 할 상황들과 잘 분리되는 데까지도 끝까지 지켜봐 주고 계신 의사선생님들께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요즘도 힘들 때 들으라고 담당의 선생님이 녹음해 주신 7분짜리 명상 소리를 듣는다. 사실 그냥 숨을 쉬는데 집중해 보라는 내용인데 잘 들어보면 누구나 다 소중한 사람인데 나도 그중 하나라고 애정을 듬뿍 담아 말해주시는 게 느껴져서 꼭 힘들 때가 아니어도 가끔 듣는다.
넘어지는 것도, 다시 일어서는 것도 모두 일하면서 했으나 일을 잘 하면서 하지는 당연히 못했다. 그래서 30대에는 일을 좀 잘 해보고 싶다. 그리고 오빠랑 결혼을 하고 싶다. 얼마 전, 모닥불 아래에서 각자 새해 소원을 적었는데 오빠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여러 가지 소원들을 적었다. 그 소원들에는 어떤 형태로든 내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리고 오빠가 적은 마지막 소원은 나와 가족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오빠와 가족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적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요즘 매일 아침 함께 눈을 뜨고 같이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잠에 든다. 나는 오빠랑 살면서 우리가 결혼해서도 이쁘게 잘 살 거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배려하고 양보하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며 잘 살 거라고. 우리는 결이 비슷해 잘 싸우지도 않지만 싸우더라도 하루를 넘기지 않고 대화로 푸는 편이다. 물론 그런 우리도 싸울 때가 있다. 하지만 싸우고 기분이 안 좋아지더라도 오빠는 한 번도 날 집에 데려다주지 않은 적이 없다. 서로에게 기꺼이 오늘도 지고, 또 내일도 지는 게 사랑 아닐까?
어떤 하루던 오빠와 함께라면 뭐가 필요 없다는 걸, 빛나는 하루가 뭐 별거 없다는 걸 매 순간 느낀다. 정말 감사하게도, 얼마 전, 오빠를 만나고 처음으로, 죽으려고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진심을 다해 할 수 있었다. 30대를 시작하며 나는 앞으로 넘어지고, 일어서야 할 일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낼 것이라는 걸 확신한다. 내가 살아 있어서 참 다행이다. 살면서 행복에 목매지 않을 것이다. 행복하려면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니까.
마지막으로, 돌이켜보면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모든 인연이, 그게 설령 잠시 머물다 간 인연이었을 지라도, 다 귀한 인연이었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갚으면서 살아야지.
고맙다. 고마워. 거지 같은 내 인생 다 듣고도 내편 들어줘서 고마워. 나 이제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해야겠다.
- <나의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