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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로 나온 집에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by 초이

집을 나온 지 80일이 되었다. 그동안 많이 울었다. 엄마는 그 어떤 것에도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고 두 달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중국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전달받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해 어떻게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냐고 물었지만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닌 ‘네가 원하는 사과? 해줄게. 미안.’이라며 전화를 뚝 끊는 엄마의 모습에 또 실망했다. 집을 빼버리고 엄마를 다시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자식이기에 부모한테 어떤 이유에서든 그러면 안 된다며 엄마를 보지 않는다는 얘기는 앞으로 가족 그 누구도 보지 않겠다는 얘기와도 같다며 각오하라는 아빠에게 아빠도 방관자일 뿐이라며 상처를 줬다.


집을 뺄 거니 동생에게 집을 구해달라는 내 말에 엄마에게 연락이 왔고 엄마는 사과를 했다. 엄마는 처음부터 사과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화가 나있어서 엄마가 사과를 하고 말고를 떠나 내가 엄마를 용납할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난 그동안 더 화가 났을 뿐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맞다. 사실 엄마가 사과를 해도 엄마를 용납하기는 쉽지 않았다. 평생을 나에게 폭력적인 방법들로 화를 풀었던 엄마를 용납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라는 법이 없어 불안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안 보고 살 수도 있었고 물론 지금도 아직 엄마를 보고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서는 건 아니지만 집에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동생은 언제든 집에 들이닥칠 수 있는 엄마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날엔, 확실하게 엄마가 그러지 못하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내가 정신적으로 아팠기 때문에 이제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면, 내가 엄마 마음대로, 뜻대로 안되면 나를 아픈 사람 취급했다. 나라는 사람을 전혀 하나의 개인으로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지 않았다. 나는 아파서가 아니라 나라서 어떤 것을 원하거나 또는 원하지 않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엄마 말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야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왜 아직도 모를까. 내가 엄마 원하는 대로 어떻게 안된다고 죽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왜 아직도 모를까.


그런데 한번 잘 해보고 싶은 마음 왜 없을까. 나는 엄마가 불쌍하기도 하다. 엄마도 아팠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아픈 것 같다. 중국에서 모두와 떨어진 채 화를 풀기 제일 쉬운 상대가 우리였던 것 같다. 동생도 피해자일 때가 있었지만 동생은 건드리면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질 거라는 걸 엄마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삐뚤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말이다. 나에 대한 기대가 훨씬 컸다는 것 또한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요즘 엄마랑 가끔 연락을 한다. 별일도 없는데 말이다. 편한 마음으로 연락을 하는 건 아니지만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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