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 입사한 지 일 년 반 만에 21년 4월 병원에서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정신과 병동에 21년 12월부터 22년 1월까지 1차 입원을 하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22년 5월부터 22년 7월까지 2차 입원을 했다.
그러니까 회사를 다니면서 아팠다. 회사 때문에 아팠다는 말이 아니다. 말 그대로 회사를 다니면서 내 삶의 우여곡절 속 곪고 곪은 게 터져 아팠다. 술 기운에, 약 기운에 항상 취해있었다. 새벽에 자살시도를 하고 경찰이 출동해 응급실에 실려 가느라 아침에 출근하지 못하기도 했다. 어쩔 땐 출근했다가 마음을 다잡지 못해 대낮에 자살시도를 하러 이탈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내 유일한 목표는 죽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깨달은 것은 누군가는 내가 그렇게 망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겠지만 그때 그렇게 망가져가는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나를 아팠던 사람이 아니라 아직도 아픈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 알면서도 누구에게나 이해받고 싶었지만 역시 사람들은 나를 굳이 이해해 주려 노력하지 않았다. 물론 나를 걱정해 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아프면서 일을 그만둬야 하나 끊임없이 고민했다. 일상생활도 하지 못하면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 정말이지 지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회사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을 너무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녔다. 그리고 내가 나아서 일을 열심히, 잘 하면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걸려도 차차 바뀔 거라고.
내 욕심이었나 보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 당신이 못 본 것에 대하여, 당신이 잘못 본게 아니라 내가 못본 것에 대하여.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사람은 자기 세계 밖에 있는 상대의 언어를 '당장'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유선경
최근 그만둬야 하나 다시 고민했는데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향한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데 의식하지 않고 남들이 내가 아닌 나에 대해 뭐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려 한다. 그리고 사실 그만두면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다른 일을 운 좋게 찾는다고 해도 거기서 나를 정신병자로 보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 피하고 싶다.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바른 자세, 맑은 정신으로 오늘의 일을 오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단순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