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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pr 28. 2021

잠과의 싸움


약을 먹은 지 2주가 됐다. 약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는데 특히 저녁 약을 먹고 나면 거의 기절하다시피 몇 분 안 돼 바로 깊은 잠에 든다. 잘 자는 건 좋은데 이게 잘 자는 건가 싶다. 열 시간을 넘게 자도 계속 졸리다. 정말 쉽지 않은 싸움이다. 의사 선생님께서 일주일마다 복용량을 조금씩 늘려 처방해 주실 거라고 하셨는데 저번 주 수요일 새로 처방받은 약을 먹고 깊은 잠에 들어 다음날 깨지를 못해 회사에 한 시간이나 지각을 했다. 느낌상 당분간은 새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하루, 이틀 정도는 또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여쭤보니 의사 선생님께서 시간이 지나면 복용량이 느는 패턴을 몸이 기억하게 될 거고 그렇게 익숙해지다 보면 새로 처방받은 약을 먹어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조근과 야근을 자주 서는 일을 하는 나는 약을 먹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다. 참고로 우리 부서는 조근과 야근을 두 명씩 한 팀으로 돌아가며 선다. 두 명 밖에 없어서 내가 한 명 몫은 더 제대로 해야 한다. 야근 때 약을 먹고 깊은 잠에 든 후로 야근 때는 약을 먹지 않기로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했지만, 아침 8시에 출근해야 되는 평근 때도 안 그래도 지각을 할 까봐 걱정되는데, 아직 약을 먹은 후로 아침 6시에 출근해야 되는 조근을 서보지 않은지라 조근 때도 지각을 할 까봐 걱정됐다. 지각 문제가 아니더라도 질식할 것 같아 아예 출근을 못할 뻔한 적도 있어서 불안했다.


고민 끝에 나는 데스크 선배와 조근과 야근을 같이 서는 1진 선배께는 말씀을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데스크 선배께는 병원 예약이 어려워 어쩌면 매주 불가피하게 근무 시간에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말씀도 드려야 했다. 참고로 우리 부서는 부서원들이 대기를 하다가 데스크 선배께서 일정을 배정해 주시면 현장에 나가는 식으로 일을 한다. 데스크 선배께서는 원래 부서원들이 근무 시간에 병원에 가야 할 때 유연하게 일정을 조정해 주셨다. 그런데 나의 경우 더 자주 그래야 할 수도 있기에 말씀을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데스크 선배께서 날 어떤 일정에 보낼지 어쩌면 매주 신경 쓰셔야 한다는 게 죄송했다. 회사는 개개인의 편의를 다 봐줄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나 하나의 편의를 그렇게 까지는 봐줄 수 없다고 하실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말씀을 드리기로 마음을 먹고도 이게 맞나 스스로 몇번이고 되물었다.


더군다나 내가 약을 먹는다고 했을  '약까지 먹어야 하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부서원으로서가 아닌 사람으로서도 용기가 필요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걱정됐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걱정과는 달리, 두 분 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무슨 일이든 사소한 거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데스크 선배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약 잘 먹고 치료 잘 받아. 행여나 지각이 걱정돼서 복용량을 임의로 조정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고 꾸준하게 의사 지시 잘 따르고 좋아지길 바랄게.


선배들의 이해와 배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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