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일만 했는지 모르겠다.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루에 두 탕은 기본이었다. 방학 때는 더 많이 일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일자리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됐다. 나는 내가 낯을 가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싹싹함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싫으면 싫은 게 다 티 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게 웃긴 게, 상황에 맞춰 마치 원래 그랬던 양 변했다. 그게 원래 나면 어떻고 아니어도 어떠하리. 난 내가 무인도에 떨어져도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되게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이제 잘 울지도 않았다. 원래는 마음이 약해서 많이 우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할머니가 눈 밑에 있던 점을 그렇게 빼라고 했었는데.
나는 비위가 엄청 약한 편이었다. 내가 먹은 걸 정리하다가도 구역질을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알바하면서 싹 고쳤다. 손님이 남긴 음식으로 서서 저녁을 급하게 해결했던 때도 많았다. 그럴 땐 그냥 맛있게 먹었다. 배고팠으니까. 그 정도였는데 뭐 손님이 남긴 음식을 정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화장실 청소며 토로 더럽혀진 복도 청소며, 아무렇지 않았다. 비위가 좋아진 건 매우 마음에 든다.
시험기간 때는 그래도 며칠 알바를 쉬었다. 시험 준비에 남들처럼 평소에 해둔 거 플러스 몇 주 내내는 아니어도 며칠은 쓰고 싶었다. 나는 그제야 학교 도서관에서 동기, 선후배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공부하는 걸 보게 됐는데 나중에는 그 모습이 마음 한 편에 부러움으로 남더라. 생계형 알바를 하는 친구는 많지 않았고 알바를 하는 친구들 중에는 몇 달 빠짝 일해 명품 백을 사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것도 그럴게, 잘 사는 친구들은 홍콩대에 더 많았다.
나한테는 졸업장을 따는 것만큼 중요했던 게 빨리 졸업을 해서 학비를 덜 내는 것이었다. 빠른 졸업을 위한 계획을 1학년 때 다 세웠다. 4년제 대학이었으니 4년 동안 필수로 들어야 할 수업, 선택할 수 있는 수업, 이수해야 할 학점, 프로그램 등을 다 파악하고 3년 안에 졸업하는 걸 목표로 두고 계획을 세웠다. 생각해 보면 참 대견하기도 하다. 결국 3년 안에 졸업을 했으니까. 지금도 내가 3년 만에 졸업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엄청난 수재인 줄 안다. 공부 진짜 잘했나 보다고 말한다. 전혀 아니다. 학점은 똥망이었다.
내가 2학년 때, 3년 안에 졸업하려면 지금부터 인턴을 해야 졸업하고도 취업을 바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여러 기회를 알아보던 중, 학교 선배의 도움으로 AP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돈을 받고 하는 일은 아니었기에 나는 원래 하던 알바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숙사에서 방을 빼줘야 했다. 홍콩의 집값은 어마 무시했다. 그때부터 나는 수업도 거의 가지 못하고 낮에는 AP에서 일하고 밤에는 알바를 뛰었다. 30명밖에 없으니 누구라도 결석을 하면 다 표가 났지만 교수님들은 친구들이 해준 대리출석을 알면서도 넘어가 주셨다.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다들 알고 계셨다.
그렇게 AP에서 7개월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딱 마침 AFP에서 인턴 모집 공고가 나서 지원한 결과 합격했다. 그렇게 AFP에서 3개월을 인턴으로 일하다 졸업을 앞두고 프리랜싱 제안을 받아 1년을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CNN에서도 한 달 정도 일할 기회가 생겼다. 외신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풀어보겠다.
무일푼으로 일했던 인턴 때와는 다르게 프리랜서가 되고서는 돈을 받았지만 그래도 집값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당시 작은 집을 세 명이서 나눠 썼는데도 월세만 인당 100만 원 정도였다. 밤낮으로 일하다 보니 나에게도 과부하가 오기 시작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AFP에서 일하고 끝나자마자 새벽 3시까지 알바를 뛰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새벽에 일 끝나고 나도 모르게 부둣가에 찾아가 한참을 서성이다 주저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내가 나를 계속 죽였다.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