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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May 26. 2021

엄마가 엄마의 삶을 찾아나서면서

엄마는 일본어를 공부하고 호텔리어의 꿈을 꿨던 진취적인 청년이었다고 한다. 일본에 있는 호텔에서 오퍼가 오기도 했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엄마는 겁이 정말 많은데 엄마에게도 그렇게 가슴 뛰는 시절이 있었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주변 어르신들의 반대와 만류가 심했다고 한다. ‘여자가 무슨 호텔에서 일을 하냐’ 식의 반응들이셨다고 한다. 엄마는 그렇게 꿈은 세월이라는 서랍장의 후미진 곳에 고이 접어두고 아빠와 결혼을 하고 우리를 가졌다고 한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로 몇십 년을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나야 뭐 엄마가 항상 집에 있는 게 좋았지만 엄마는 집에만 하루 종일 있는 게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매일 누워있고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자식으로서 특히 딸로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우리도 키울 만큼 다 키웠으니 이제라도 엄마의 삶을 온전히 엄마의 것으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당장 거창한 꿈이 아닐지라도 소소한 목표들로 엄마의 하루를 채워갔으면 좋겠다고, 나는 엄마를 응원한다고 전할 수 있을 때마다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에서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잠깐 한국에 놀러 나왔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중국에 돌아가지 못하셨던 한 한식당 주인분께서 엄마에게 가게를 맡기셨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 가게의 종업원이 고향에 놀러 가거나 아파서 일손이 부족해 가게가 너무 바쁘면 가끔 가게 일을 도우셨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가게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책임지고 신경 써야 한다는 점에서 엄마는 벌써 신나 보였다.


 후로부터 엄마에게 일어난 변화들은 정말 놀라웠다. 엄마는 앞치마와 추리닝을 벗어던지고 마치 출퇴근하는 새내기 직장인처럼 옷차림에도 화장에도 머리에도 신경을 썼다. 아빠는 내게 엄마가 점점 이뻐진다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스케줄을 알차게 짜고 그에 맞게 바쁘게 움직이면서 엄마는 성취감  그로부터 오는 뿌듯함 같은 것들을 느끼는  같았다. 손님들을 상대하는  엄마의 타고난 재능이었는지 엄마는 살아있다고 느끼는  같았다. 엄마는 식당 운영뿐만 아니라 홍보에도 신경을 썼고 스스로 초복에 오리백숙을 먹으러 가게에 오라는 SNS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다.  엄마가 그런    아는지 몰랐다. 내게 용돈도 줬다.


엄마는 50대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딸인 나도 그런 엄마를 보며 앞으로 내가 가정을 꾸리고 잠시 일을 내려놓게 되더라도 거기서 끝이 아니라고 언제든 원할 때 다시 도전할 수 있고 개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느꼈다. 그걸 느끼게 해줘서 감사했고 엄마가 행복해 보여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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