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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수 Sep 17. 2022

동행

내 베스트 프랜드는 누구인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서해안의 ‘석포리’라는 섬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달랑 절친 1명을 동행하고 인천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서 조그마한 섬에 도착했다.



2박 3일을 그곳에서 지냈는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같이 간 절친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서 노래한 것이 전부이다. 우리는 바닷가 옆에 많은 사람들처럼 텐트를 치고 잤는데, 100채는 넘게 빽빽하게 들어찬 텐트촌이었다.

여느 고삘이들은 벌써 수작을 부려서 여학생들과 공놀이를 하고 다이내믹하게 놀고 있는데, 우리 둘은 마치 시장통에 방문한 수도승처럼 고고(孤孤)하게 기타 선율에 맞추어서 조용히 노래만 불렀다. 그렇게 둘은 서로 숯기가 없었지만, 실제로는 마음속에 청소년 말기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하였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사귄 친구는 술꾼이었다. 입담도 세고 거침이 없으며 나와 술 마시지 않는 날은 다른 그룹에 끼여서라도 술을 마셨다. 나도 고등학교 때 눌려왔던 에너지가 터지면서 그 친구를 따라다니며 튼튼하지 않은 위장에도 자주 마셨다. 

군대에 가기 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알바를 하면서도 대학 1년을 그렇게 그 친구와 흥청망청 보내면서 학점은 술 먹고 이야기를 많이 듣고 해서인지 경영학 전공에서 철학은 A플러스를 받았지만 다른 과목들의 성적이 안 좋았다. 그래서 군 제대 후 평균 B 학점 이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봄 소풍을 갔는데,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풀숲 위에서 던진 큰 돌이 내 이마에 맞아 6바늘을 꿰매었다. 반장이 나를 업고 산 아래 병원까지 갔는데, 의사는 흉터가 생긴다며 마취도 하지 않고 꿰매어서 무진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 의사가 돌팔이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미간에 흉터가 지금도 남아있다. 

수업시간에 인자하신 선생님들은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나를 보고는 양호실에서 쉬라고 해서 친구들의 선망을 받으며 교실을 나갔는데, 수업을 빼먹는 재미를 흠뻑 느꼈었다.  나는 그전까지는 공부보다는 축구 등 운동을 좋아해서 또래들과 주로 어울렸지만 그래도 시험 때는 당일치기라도 공부를 해서인지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받았다.

그러나 몸이 아파서 그 좋아하던 축구도 못하니 자연스레 공부를 잘하던 짝꿍에게 관심이 갔고, 그 짝꿍과 어울리던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도 어울리게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공부한 이래로 처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들에게 자연히 동화되었던 것이다. 

1학기 기말고사에서 반에서 5등으로 내 이름이 불리자 친구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35등에서 갑자기 5등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계속 좋은 성적을 받아서 중학교 3학년을 60명이 넘는 반에서 9등으로 졸업을 하였다. 그 당시는 지금같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머리가 깨지는 사고로 인해 어울리는 친구가 바뀌면서 생긴 변화였다.


사회에 나가서도 누구와 어울리느냐에 따라서 나의 행동이 결정이 되고 나의 가치관은 어떤 때는 고고해지고 어떤 때는 차마 이야기하기 부끄러울 행동으로 기억된다. 

무역회사를 창업할 때에 파트너로 일하고 싶다며 찾아온 사람은 나중에 사기꾼 본색을 드러냈고, 첫 사업을 접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한번은 동갑인 기술력이 있는 동업자와 어울리며 재미있게 추진했던 프로젝트는 그 친구의 기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으로 실패를 하고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     


누구와 동행하는지에 따라서 내 인생이 결정된다. 

성인이 되면 누구와 동행할지에 대한 책임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마음에 맞는 사람이고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서 동반자가 되었지만 나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주어 큰 혜택을 보기도 한다. 


나는 무역업을 할 때, 뉴질랜드에서 온 바이어가 허름한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낡은 모자를 쓰고 수염은 아무렇게나 기른 외모와 투박한 말에 처음부터 기대를 접었다. 그러나 배우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말에 최대한 성의를 다해 상담하고 원하는 제품이 있는 곳을 일일이 방문하여 보여주었는데, 나중에 큰 주문을 해서 놀란 적이 있다. 그다음부터 영업을 할 때,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한 것은 물론이다.   

 

친구라는 말은 사람을 미소짓게 만든다. 옆에 자리하며 대화 상대가 된다. 혼자라면 못할 것들을 하게 해준다.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에너지가 샘솟는다. 친구의 범위를 넓히면 누구나 될 수 있다. 선생님과 가깝게 지내면 친구같이 느껴진다. 배우자가 때로는 친구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떨 때는 자녀와 뒹굴며 놀 때는 친구가 된다. 


누가 나의 베스트 프랜드인가? 내가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기쁠 때 함께 웃어주는 친구. 내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 언제나 한결같은 친구. 언제나 내가 부르면 달려오고 찾아가면 반겨주는 친구. 나를 위해서 매일 기도해주는 친구.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때로는 나를 살리기 위해 목숨마저도 내줄 수 있는 친구. 나는 그런 베스트 프랜드를 가지고 있는가? 혹은 내가 누군가의 그런 베스트 프랜드인가?    

 

그런데 여기 베스트 프렌드로서 그지없는 분이있다. 

대단히 높은 위치에 있고 능력이 탁월한데, 겸손까지 하다. 부르면 언제나 달려오고 내가 슬플 때, 언제나 위로를 해준다. 앞길이 안 보여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때, 올바른 길을 안내해 준다. 내가 가끔 잘못해서 용서를 빌면, 기꺼이 용서해 준다. 

자신보다 한참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매일같이 죄를 짓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도리어 사랑한다. 게다가 그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친구가 되어준다. 심지어 친구가 되기 위해 항상 기다리고 있다. 


우리를 기다리는 그분. 더 이상 동행할 수 있는 동반자로서 최상의 다른 선택은 없을 것이다. 

그분과 어울리며 살아나가는 인생은 분명 크게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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