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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수 Sep 28. 2022

이상한 왕

어느 청년이 새로 뽑은 고급 차를 끌고 자주 가던 국밥집 앞 정 가운데 차를 세우고 호기있게 문을 열었다. 

어깨에 힘을 주고 들어간 청년은 거칠게 의자에 앉더니 위엄있는 목소리로, “국밥 한 그릇 주시오.” 청년이 가게를 둘러보니 아무도 그의 이런 행동에 신경을 쓰지 않자, “허. 감히 내가 누구인데 나를 무시해?” 밥을 다 먹고 투덜대며 국밥집을 나가던 청년은 갑자기 문을 박차고 다시 들어왔다. 

눈에 살기를 띄우며 좌중을 압도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외치길, “어느 놈이 내 차에 하얀 줄을 그려놨어, 엉?” 그러자 어디서 나왔는지 거인같은 체격의 남자가 나와서, “내가 했다. 어쩔건데?” 2m의 키에 육박하고 철판을 두른 가슴을 한 남자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자 청년이 남자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하던 말, “칠한 거 다 말랐다고 알려드릴려고요.”      


다윗(David)은 ‘다윗과 골리앗’의 스토리로 일반 사람들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8명의 아들이 있는 평범한 가정의 막내였다. 이스라엘이 이웃 나라인 블레셋(팔레스타인 지역)과 전쟁을 할 당시, 그는 16세가량의 양치기 소년이었다. 

골리앗은 키가 283m 였고 57kg의 청동 갑옷, 그리고 7kg의 철제 창으로 중무장을 했고 무수한 전투경험을 한 베테랑 전사였다. 

이스라엘을 침공한 블레셋의 골리앗은 이스라엘에서 한 명을 보내어 자신과 일대일 대결로 전쟁의 승패를 정하자고 고함쳤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아무도 이 괴물같은 자에게 덤빌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서로 눈치만 보며 무서움에 떨었다.     


다윗은 양을 치는 일을 하다가 전쟁에 나간 형들에게 줄 음식을 배달하러 전장에 갔고 그날도 골리앗이 이스라엘 진지로 와서 싸울 사람은 빨리 나오라고 조롱하며 고함을 쳐댔다. 다윗은 멀찌감치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파악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무서움에 떨지 않았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왕에게 가서 자신이 나서겠다고 말한다. 왕은 어이가 없어 하였지만, 다윗은 한사코 자신이 양치기로서 맹수들을 물리친 사례를 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드디어 허락을 받는다. 그는 입혀주는 갑옷도 거부하고 개울가에서 매끄러운 돌 5개만 들고 골리앗 앞에 섰다.

  이스라엘에서 자신을 상대할 사람으로 갑옷도, 무기도 없는 소년이 나오자 골리앗은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소년을 단칼에 없애려고 다가왔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다윗은 재빨리 골리앗에 다가가며 물매질(끈에 돌을 넣고 팔을 휘둘러 원심력에 의해 돌을 던지는 투석방식)을 하여 돌을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혀 쓰러뜨리고 그의 칼로 목을 베어 죽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블레셋 군대는 그들이 믿던 거인이 죽자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은 용기를 얻어 그들을 추격하여 대승을 거둔다.


다윗은 이 싸움으로 용기의 상징이 되었다. 종종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일에 비유로 사용되곤 한다. 16세 소년인 다윗의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뭣 모르는 어린 소년의 만용(蠻勇)이 우연히도 맞아떨어진 것일까? 

성경에서 다윗이 하는 말을 보면 그의 용기의 원천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전장에 도착하여 골리앗이 하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할례란 이스라엘에서 남자의 성기 끝 살가죽을 끊어 내는 풍습으로 이스라엘 남자를 상징한다.

다윗이 왕에게 나가서 자신이 싸우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 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 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골리앗 앞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거침이 없는 그의 말에서 그의 용기의 원천은 신을 믿는 믿음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기골 장대한 골리앗이 무적의 전사로 보이지 않고 양치기를 할 때 물매질로 쫓던 이스라엘을 침공한 짐승으로 보였다. 그가 포효하며 이스라엘에 자신을 상대할 사람이 없음을 조롱하자 무서움보다는 모멸감을 느꼈다. 절대자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 절대자가 이 싸움을 보고 계시고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당시 양치기는 때로는 늑대, 사자 등의 맹수들로부터 양을 지켜야 했다. 적절한 무기가 없던 그때, 원거리에서 맹수를 쫓을 수 있는 유용한 무기로 물매질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는 일반 양치기와는 달랐다. 물매질로 맹수의 몸을 맞추어 쫓아내고 그 와중에 더러는 한두 마리를 잃어버릴 수 있었지만, 그는 한 마리의 양이라도 맹수에게 잃지 않으려 했다. 양치기라는 일은 비록 가업을 돕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이 맡긴 일이라고 생각하고 충성되게 하였다.

성경의 ‘시편’ 등에 보면 친밀하게 신과 대화를 하는 다윗을 보면 얼마나 철저하게 절대자 중심으로 사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신이 주신 일을 잘하기 위해 물매질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였다. 그러다가 맹수로부터 양을 한 마리 잃어버리면 절치부심을 하고 더 열심히 연습하였다. 먼 거리에서 나무를 정확히 맞추는 것에서 나아가 이제는 나무에 조그맣게 표시한 곳에 정확히 맞추게 되었다. 그러다가 맹수의 공격이 있었고 그의 돌은 정확히 맹수의 이마에 꽂혀 꼬꾸라뜨렸다. 그는 달려나가 단칼로 맹수의 목을 찔러 숨을 끊었다.

이제는 단 한 마리의 양도 잃어버리지 않는 이스라엘 최고의 양치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지 않고 그 후에도 더 연습을 하여 쏜살같이 달리는 맹수의 이마도 정확히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용기는 만용이 아닌 확신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와 달리는 맹수의 이마를 먼 거리에서도 정확히 맞추는데, 근거리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골리앗의 이마는 보름달같이 커보였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그의 모멸감은 분노로 바뀌고 확신으로 변하였다. 만약 물매질이 빗나가면 자신은 골리앗의 칼에 죽을 수도 있었지만, 절대자를 모욕하는 골리앗을 상대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고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 그를 처리해 주실 것을 믿었다. 그는 신에게 기도했고 신이 지켜줄 것을 확신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상식을 벗어난 행보는 당시 왕이었던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보여준다. 그가 골리앗을 죽이고 사울 왕에게 발탁되어 왕궁으로 들어가고 전쟁에 나가 계속해서 승리하여 결국 장군이 된다.

하지만, 사울 왕은 민심이 왕인 자신보다 점점 다윗에게로 향하자 시기심과 왕권의 위협을 느끼고 다윗을 죽이고자 한다. 

졸지에 장군에서 도망자가 된 다윗은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게 된다. 그러다가 사울의 추적군대와 맞닥뜨리고 동굴에서 잠을 자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다윗은 측근의 강력한 주장을 물리치고 죽이지 않고 옷만 살짝 베어서 간다. 그리고 나중에 사울 왕에게 멀리서 외쳐 자신이 살려주었음을 알린다.

사울은 무고한 다윗을 죽이려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물러났으나 얼마 후 또다시 다윗이 숨어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군사를 데리고 잡으러 온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에 그의 물병만 들고 물러난다.     


왜 무고한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살려주었을까?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으므로 사울만 죽는다면 자신이 왕이될 수 있었을 텐데 왜 두 번이나 그런 행동을 했나? 

성경에 나오는 그의 말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신을 신실하게 믿던 다윗은 모든 자신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은 신의 주관하에 있는 것을 알고 억울하게 도망하면서도 신세를 한탄하며 좌절하지 않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절대자가 반드시 사태를 역전시키시리라 확신했다. 비록 적이라도 이스라엘의 왕은 절대자가 정한 것이기에 자신의 손으로 그 섭리를 거스르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 판단했다. 사울 왕이 계속해서 죄를 짓고 절대자를 따르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하리라 확신했다.

결국,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그의 세 아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시체를 잘 장사하고 7일간 슬퍼하며 금식을 했다. 

다윗은 이스라엘 유다 지방의 왕이 되었다가 후에 이스라엘 전체를 통치하는 왕이된다. 그는 극심한 고통과 억울함 속에서도 신의 뜻을 따랐고 축복을 받게된다.     


다윗의 또 다른 이상한 행동은 아내인 밧세바와의 사이에 난 아들이 크게 앓고 누웠을 때였다. 그는 절대자에게 아들을 살려달라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자기 집의 맨땅에 누워서 지내며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렇게 한지 7일째, 그의 아들은 결국 죽었다.

신하들은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던 다윗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감히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가 눈치를 채고 물었다. 신하들이 어쩔 수 없이 비보를 전하자 크게 상심할 줄 알았던 다윗이 전혀 예상 밖의 행동을 한다. 

그제서야 맨바닥의 자리에서 일어나 목욕을 하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는 새 옷을 입고 성전으로 가서 신에게 경배를 드린다. 그리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신하들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가 살아있을 때 내가 금식을 하면서 슬피 운 것은, 주께서 혹시 내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 아이를 살려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의 뜻에 따라 아이가 죽었으니, 내가 금식을 해야 할 까닭이 없지 않소? 내가 죽은 아이를 다시 데려올 수가 있겠소? 나는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지만, 그 아이는 나에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었잖소.” 

철저하게 절대자와 동행하며 절대자 중심으로 사는 사람의 말이다.     

  


이스라엘에서 다윗은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 이상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그의 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이 어려움 속에서 희망이 되었으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돌파구가 되었다.

다윗은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가리지 않고 언제나 그는신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했으며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는 신에게 묻고 지시를 받아 움직였다. 신이 있었다면, 항상 자신을 찾고 구하며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지속하는 다윗을 크게 쓰고 축복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행동은 이상하게 보이지만 절대자인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을 한 것이고 지극히 지혜로운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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