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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수 Oct 17. 2022

변화의 증거

한 자매가 열심히 작정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자매는 날마다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신랑이 필요합니다. 결혼해야 합니다. 좋은 남자를 보내주시옵소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자매였는데 작정 기도를 계속 드려도 하나님께선 도무지 남자를 보내주시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자매가 기도하는 것을 본 목사님이 자매를 불러 이야기했다. “자매님 기도는 너무나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에요,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하기보다 부모님이나 이웃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는 것이 성숙한 것이고 잘 전달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매는 깨달음을 얻었는지 다음 날부터는 기도의 내용이 바뀌었다. “하나님 저희 사랑하는 부모님에겐 정말로 좋은 사위가 필요합니다. 부디 저희 부모님들을 위해 근사하고 좋은 사위를 보내주시옵소서”  

 

인간의 공통된 특성 중의 하나는 단 한 번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두 번 살지 못한다. 

그러나 두 번째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고로 죽을 뻔 하다가 운 좋게 살아났다던지, 의사가 포기한 병을 치유하고 완쾌된 사람들은 두 번째 삶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들은 새로 태어났다는 생각에 과거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체험해서인지 아둥바둥 매달리지 않고 초연(超然)해지기도 한다.

삶에 더 진지해지고 더 열심히 살기도 한다.      


두 번째 삶이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인들이다. 

그들은 어떤 계기로 변화가 되어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서 다시 태어났다고 말한다. 

옆에서 지켜보면 정말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말과 행동이 전과 다르다. 기독교인들을 비난하던 어떤 사람은 성경을 읽고는 번개를 맞은 듯 갑자기 다른 사람들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며 전도를 하기 시작한다. 인색했던 어떤 사람은 기독교인이 되더니 자기의 재산을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사용한다. 술을 좋아하고 새벽까지 룸싸롱에 자주 가던 남편이 예수를 믿고는 갑자기 술을 멀리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신(神)이 강림(降臨)이라도 한 것인가?


기독교에서는 이런 변화를 ‘거듭남’이라고 한다. 

국어사전에는 ‘원죄 때문에 죽었던 영이 예수를 믿음으로해서 영적으로 다시 새사람이 됨’이라고 적혀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를 만들었는데, 그들이 모든 것이 완벽한 에덴동산에서 유일한 금지품목이었던 선악과(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죄를 짓고 추방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서 그들의 후손인 모든 인간들이 태어나지마자 갖는 것이 원죄(原罪)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 원죄로 인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서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옥과 천국은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이다. 지옥 갈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을 정도의 변화라면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이상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정말 지옥에 있다가 천국에 온 사람처럼 변화가 있다. 말이 부드러워지고 얼굴이 편안해지며 안하던 짓을 한다. 그답지 않은 행동에 놀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니고 새사람이 된 것이다. 정말 다시 태어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변화의 중거 – 온유(溫柔, Gentleness)    

 

그 변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하나인 ‘온유’라고 할 수 있겠다. 

성경에 따르면, 성령은 믿는 자는 사랑(Love), 희락(Joy), 화평(Peace), 오래 참음(Patience), 자비(Kindness), 양선(Goodness), 충성(Faithfulness), 온유(Gentleness), 절제(Self-control)의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그래서 변화의 증거로 이 9가지 열매를 전부 말할 수도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만 꼽으라면, 온유라고 할 수 있겠다.

온유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가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말이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면 우선 부드럽고 연약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용되는 온유는 무기력이나 연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런 힘도 없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성경의 구약에서 예수와 같은 역할을 하고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펼친 모세는 온유한 사람의 전형이라고 불리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는 구세주의 역할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 그러나, 원래 그는 혈기가 있고 강한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 사람이었지만 이집트 왕궁에서 자라며 왕궁교육을 받게했다. 하지만 40세 때 혈기로 자기 종족을 학대하는 이집트의 군인을 때려서 살해하고 도망친 여전히 온유하고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미디안 광야에서 농장일을 하며 40년간을 훈련시키며 기어코 온유한 사람으로 만들어 80세에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의 길을 걷게 하신다. 

온유는 마치 야생마가 거칠고 힘이 넘치지만 잘 다스리기만 하면 명마로 거듭나는 것과 유사하다. 


예수는 온전히 온유하신 분이셨다. 

성경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는 신이다. 그러기에 힘이 있다. 그러나 온유하신 예수는 그 힘을 남용하지 않았다. 온유는 자기에게 합당한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스스로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힘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만 온전히 사용했다.




성경에는 거듭나고 기독교인이 되려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자아(自我)를 끊어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겸손이 들어오고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예수님을 우리 가슴에 품게 된다고 한다. 

온유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화평과 평안을 누리는 DNA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거듭난 이후에 변화한 온유한 사람은  

   

마음이 편안하며 밝고 근심과 두려움이 없다.

성급하지 않고 오래 참는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고 감사가 넘친다.

강한 비난과 모욕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에 돌을 던진 듯이 표시가 나지 않는다.

침착하며 충동적으로 대하지 않고 부드럽다.

비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모질거나 거칠지 않아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싑게 화를 내지 않고 분노와 혈기를 잘 통제한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인정한다.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지 않고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다.

자기를 공격하고 해를 입히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보복하지 않고 세상을 주관하는 분께 그 처리를 맡긴다.

겸손하고 자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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