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교육과 첫 항암
제목을 거창하게 써 놓으니, 뭔가 '서막이 오르다' 이런 느낌이 든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항암 교육'이라는 것을 받아야 한다. 약사, 영양사, 코디네이터 분을 만나게 되는데, 앞으로 암환자로서 어떤 '식이요법'을 해야 하고, '부작용'이 생길 때 대처해야 하는 방법 등을 배운다. 그 모든 교육의 핵심은 '잘 먹자'라는 것.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건 '골고루 잘 먹고, 입에서 당기는 게 있으면 그냥 먹자.' 그리고 '치료 중에 몸에 좋다는 것들(간에 무리되는 한약, 버섯류)은 먹지 말자.' 마지막으로 열나면 무조건 응급실이다.'
첫 항암 날, 세 가지 교육을 다 받고 주사까지 맞으러 갔다. 그 정신없고 숨 막히던 하루를 잊을 수가 없다.
대학병원이라는 곳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것처럼 따뜻하고 인간미 있는 의사분들이 가득한 곳이 아니다. 또한, 질서 정연하고 여유가 넘치는 곳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시장통이다. 특히 '폐암' 센터는 그냥 난민촌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보조 의자까지 가져다 놨지만 보호자는 물론이고, 환자가 앉을 의자도 모자란다. 분명 예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1시간 대기는 일상이다. 숨 넘어갈 것 같은 기침 소리 사이에 서있다 보면 그냥 각종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기분이 들고, 내가 들이마시는 숨 마저 의심스러워진다. 물론 그들 사이에서 나는 환자가 아니다.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젊은 여자이기 때문이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암의 종류에 따라 항암 주사의 종류도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앓고 있는 흉선암이라는 아이는 그리 흔한 암도 아니기 때문에 뚜렷한 치료제가 없다. (물론 이후에 흉선암 치료제로 나온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후의 진행 상황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조합을 선택한 것으로 들었다. 이 항암 주사들의 목적은 '암세포의 합성을 차단하여 암세포의 성장을 차단한다.'로 정맥 주사로 맞는다. (먹는 약도 있는 것 같던데, 이 또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어서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대기 인원이 많지 않으면 병실 같은 곳에서 누워서 맞을 수 있지만, 자리가 없다면 안마 의자에서 맞아야 한다. 여기까지도 양반이다. (세 시간을 넘게 맞아야 하는데 어디서 맞느냐가 참 중요하긴 했다. ) 그 마저도 없으면 정말 그냥 긴 의자에서 모르는 사람과 다 같이 앉아서 맞아야 한다. 외모만 봐서는 환자라고 생각이 안 되는지 나에게 자리를 맡아달라는 어르신 분들도 정말 많았다. 어디서 맞아도 상관없지만, 긴 의자도 자리가 없어서 쫓겨나듯이 구석으로 몰리는 날은 정말 싫었다. 또 다른 전쟁통이었다.
속이 울렁거린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상반신 전체가 각기 다른 리듬으로 꿀렁거리기 시작한다. 한 번 토하기 시작하면 계속 토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지만, 나는 거의 토하지 않았다. 괜찮아서 토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정말 버텼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엄마가 '자기 딸이지만, 저렇게 독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살아내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허벅지를 피멍이 들도록 꼬집고, 내 뺨을 내가 때렸다. 정신 차려. 토하지 마. 토하기 시작하면 끝이야.
그렇게 3일을 연이어 항암 주사를 맞았다. 참 몸이라는 게 신기했다. 혈관을 찾아야 주사를 맞을 수 있는데 그럴수록 혈관이 숨는다는 것이었다. 매 맞기 싫다고 최선을 다해 숨어대는 게 참 우스웠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혈관 찾는 게 어렵긴 하다. 이제는 간호사분들이 잘 못 찾는 곳을 내가 먼저 내밀기도 한다.
혈관통이라는 것도 처음 경험해 봤다. 혈관도 약한데 독한 항암 주사를 넣어대니 통증이 심하고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스팩을 올려두거나 혈관을 바꿔 맞기도 했다. 이러다 진짜 터질까 봐 그게 더 무서웠던 것 같다. (마치 풍선 불기 게임을 눈앞에서 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항암이 처음이라 부작용이 급격하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서서히 열이 오르고 속이 안 좋기 시작했다. 보리차와 탄산수를 주로 찾았다. 이상하게 맹물도 니글거렸고, 후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항암이 끝나고도 한 동안은 알코올 냄새만 맡아도 토악질이 났다.
항암 관련된 에피소드는 생각나는 대로 추가할 예정이다. 첫 항암이 끝나자마자 바로 버리가 빠지는 건 아니지만, 곧 빠질 것을 알고 있기에 1차 항암이 끝나고 머리를 밀었다. 동네 미용실에 가서 양해룰 구하고, 군대 가는 사람처럼 반삭을 했다. 다행히 손님이 아무도 없었지만, 딱히 누가 있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 충격적이었다. 내가 땜빵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