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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 Bo Nov 19. 2022

Humbly aggressive

미국회사 서바이벌 가이드 (1)

20대 초반 나는 당돌한 아이였다. 

거칠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고. 성공하고 싶었다. 


미국에서 대학원 다닐 때 KPMG(대형 회계법인) 파트너가 국제조세 수업 초빙 교수로 오셨다. 내가 좋아했던 과목이기도 하고 교수님도 실전사례를 들어가면서 강의를 너무 재밌게 해 주셨다. 

'꼭 한번 얘기 나누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날 저녁,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과 짧게 대화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돌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파트너님은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신중하게 대답해주셨다. 그분의 대답은 'humbly aggressive'. 


'겸손하게 공격적인'


공격적. 겸손??! 

언뜻 보면 두 개가 상충되는 듯 보인다. 

겸손한 척하면서 공격적이라?

공격적인 척 하면서 실제로는 겸손해라?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되고 와닿지도 않았다. 


하지만 10년 넘게 일하면서 그분의 말씀이 계속 생각났고 모토가 되었다. 


둘 다 하라는 말이다. 언제든 겸손하라. 그리고 일할 때는 공격적이게 해라. 


겸손


파트너면 회계법인에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다. 미국은 연봉도 높고 특히 국제조세는 특수 분야여서 더 잘 나간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10년 전에도 연봉이 5억 이상이고 은퇴할 때쯤이면 10억 넘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은퇴는 58세에 하고 그 뒤로 매년 지급되는 엄청 넉넉한 퇴직금으로도 진짜 여유롭게 살 수 있다고 들었다. 한마디로, 미국 회계법인에서 파트너가 되면 평생을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산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들 파트너가 되고 싶어 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게 다 이룬 듯 보이는 사람이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다는 게 놀라웠다. 


미국 조세법이 진짜 복잡하다. 법에 따른 세부 법규가 계속 나오고 계속 바뀐다. 한 사람이 모든 조세 분야를 커버하지 못한다. 연방 조세법, 주 조세법, 직접세, 간접세, 국제 조세 등. 회사에 평생 법 조항 몇 개를 맡아서 연구하고 자문하는 팀이 따로 있다. 대형 회계법인의 고객사는 주로 대기업이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분야들을 다 커버해야 한다. 그래서 회계법인 안에서도 여러 팀들이 협업한다. 특히 국제조세팀은 해외 지사들과 협업할 일이 많다. 미국 법인의 해외지사를 옮기고, 만들고, 없애는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다른 팀의 전문지식에 의지해서 가장 좋은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교만한 사람과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겸손한 사람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내가 틀렸을 때 실제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똑똑한 사람들 중에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더 발전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특히 복잡한 조세법을 다루다 보면 예외규정 하나 놓치면 답이 달라진다. 가끔은 다른 팀의 실수를 내가 커버해야 할 때도 있다. 고객은 다른 팀의 개념이 없다. 한 팀이 실수하면 회사 전체가 욕을 먹고 내가 고객사와 주로 대면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그 욕은 내 무릎 위에 떨어진다. 전에 회사에서 배웠던 것 중 하나는 실수했을 때는 그것을 덮으려고 하지 말고, 왜 그 실수가 일어났는지 인지하고, 먼저 실수를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것이다. 고객사에게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객사는 우리에게 조언을 얻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한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가끔 실수가 생긴다. 그럴 때 실수를 감추기에 급급하기보다, 빠르게 인정하고 고객사와 같이 가장 좋은 해결책을 모색한다. 대부분의 고객사는 대형 회계법인에서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아주 큰 실수가 아니라면 극대노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했을 때 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이 나에게 정직하며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이고 최선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면 믿음이 생긴다. (물론 모든 고객사가 이렇진 않겠지만..)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겸손해진다. 내가 존경심을 갖었던 파트너들은 대부분 겸손하다. 높은 위치에 있고 똑똑하고 아는게 많지만 잘난척하지 않고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일하며 직급에 상관없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할 줄 안다. 높은 자리에 있지만 본인을 낮추는 사람은 더 빛나고 사람들의 경외심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겸손할 때 배움을 계속한다.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 계속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공격적


사회는 끝없는 경쟁사회다. 회계 쪽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전 회사가 좋았던 것은 회사 내부적으로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지만 (하도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서 경쟁이 치열할 수도 없었음...) 회사 밖에서 다른 회계법인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일을 따내야 한다. 공격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회사에 일을 뺏긴다. 물론 페어플레이를 한다. (적어도 내가 일했던 회사는 그랬다..) 그렇지만 파트너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영업을 한다. 


회사 안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의식적으로 경쟁하지 않았지만 나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요구하고 노력해서 쟁취해야 한다. 한국에 살 때는 '나대지 말라'는 것이 미덕이었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게 익숙했던 교육방식이었다. 처음에 미국 회사 들어가서 그렇게 했다가 '아, 이러면 안 되겠구나..'를 깨달았다. 미국에서는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하고 내 커리어는 내가 방향 잡아서 디자인해 나가야 한다. 배우는 것도,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것이 아니고,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인지하고, 찾아서 배워야했다. 회사에 기회가 많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오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바보취급 받고 쇠퇴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팀, 일하고 싶은 곳 등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계속 표현했다. 성실하게 일했고, 내가 요구하는 것은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미국 안에서도 원하는 도시에서 일했고, 국제조세팀에 들어갔으며, 홍콩에서 주재원 생활도 하게 됐다. 이렇게 하다보면 어느새 많이 성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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