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힘'..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진부한 표현.
하지만, 또 그렇게 맞는 말이 없다.
미국에서 대학 다닐 때 나는 완전 깡 시골에 살았다. 미시시피주에 있는 주립대학교를 다녔다. 학교 주변에는 고층 건물이 없고, 차 타고 조금만 나가면 들판에서 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스테이크 집이 있다..). 타운에서 가장 핫한 곳은 '월마트 슈퍼센터'. 그나마 가장 늦게까지 열어서 밤에 가면 친구들을 자주 마주쳤다. 일식집이 1개, 아시아 음식점이 3개, 빵집 1개, 편의점 따위는 없었다. 학교 기숙사 근처에는 사슴가족이 종종 출몰해서 눈이 마주치면 서로 놀랬다. 거기에서의 경험은 마치 '톰소여의 모험' 이였다.
그런 곳에 한국인 유학생이 많을 리 없었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보통 캘리포니아 아니면 동부의 유명한 학교, 학비 비싼 학교에 있다. 유학생을 고사하고 한국인, 동양인 2세들도 거의 없었다. 그냥 그곳엔 동양인이 거의 없었다. 그때부터 미국인들과 같은 수업을 듣고, 취업 경쟁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영어는 부족했지만 다행히도 공부를 곧잘 따라갔고, 교수님들의 신임을 얻어, 교수님 추천으로 대형 회계법인에서 인턴도 할 수 있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야 하는데, 간절하게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도 진짜 '미국다운' 곳에서, 대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학교의 장학금 제안을 뿌리치고 근처 대도시인, 애틀란타로 대학원을 갔다. 대학원을 들어가자마자 정신없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형 회계법인에 취업했다.
애틀란타에는 한국인들이 꽤 많다. LA와 뉴욕/뉴저지 다음으로 한국인이 많은 도시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한국인 2세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난 그때도 영어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에만 미국에 왔어도 영어를 훨씬 잘하고,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늘 완벽하지 않았던 내 영어실력이 아쉬웠다. 신분도 '외국인 노동자'였다. 미국은 취업 비자도, 영주권 받기도 힘들다. 취업 비자를 받으려면 회사가 보증을 서고 변호사를 통해서 해야 한다. 취업 비자 지원자도 많기 때문에 지원자들이 100% 비자를 받지 못한다. 때문에 대부분은 일부 대기업들만 외국인들에게 채용기회를 줬다. (굳이 외국인을 채용할 필요가 없으니..) 외국인들은 미국인들에 비해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국인 2세들은 대부분 신분 걱정도, 영어 걱정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서, 기회의 땅에서 신분, 영어의 제약 없이 마음껏 누비고 다니겠구나.. 아.. 부럽다..'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내가 만난 몇몇 2세들은 나의 회사 취업 얘기에 놀랐다. "미국 회사에 취업했어? 대단하다..." '음.. 이건 무슨 반응이지? 미국에 있고 미국 주립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미국 회사에 취업하는 노력이 당연한 것 아닌가?..'
회사 처음에 입사했을 때도 동기 중에 한국인 유학생은 나 하나였다. 직원 대부분은 백인이었고, 흑인, 동양인도 거의 없었다. 있으면 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영어권 국가에서(캐나다, 싱가포르) 왔거나. 매니저 포함 그 윗 직급은 거의 대부분 백인이었다. '애틀란타에 한국인이 이렇게 많은데 왜 한국인들은 회사에 없는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2세들 중에는 아예 미국 회사에 취업할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워낙 한인들이 많으니 한국 회사도 꽤 많아서 한국 회사에 취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 회사, 특히 대기업 취업은 생각도 해보지 않는 듯했다. 그때 느꼈다. '아.. 내가 갖은것이 얼마든, 안된다고 생각하면 못하는구나.. 내가 원하지 않고 꿈꾸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물론, 원하고 꿈꾼다고 해서 모두가 이룰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예 단념해버리면 그 근처에도 못 가는 것 같다. 원하지 않는 것을 누군가 나에게 공짜로 주지는 않는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그 기회는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미국에 갔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몇 년 있다가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있다 보니, 노력한 만큼 인정받고, 승진하고, 똑똑한 사람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재밌었다. 회사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힘들고, 지치고, 고단했지만, 무슨 배짱인지 어떤 일이든 못한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이런 똥배짱을 심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못한다. 나도 포기한 나한테 다른 사람이 기회를 줄까?
생각의 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안된다고 하면 "너나 잘하세요!"를 외쳐주고,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