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두 아빠와 다크 소울 푸드

by 이지성

기초반 수업이 끝나는 4월 무렵 오뚜기 푸드 에세이 공모전에 지원했다.

그때 썼던 에세이를 여기에 실는다.


-넌 내가 밥 주는 거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라.

스크린 골프장 황 사장님은 늘 이런 식이었다. 거친 표현으로 사람을 곤란하게 했다. 70년생 경상도 남자 황 사장님의 지론은 이랬다. 밑바닥부터 구르는 것이 세상 이치이며 편하게 살아봐야 배울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대쪽 같은 철학에서 성공한 남자의 프라이드가 보였다. 국보급 센터 서장훈의 성공담과 유사했다. “치열하게 살았어요. 즐기는 자가 성공한다? 다 뻥이에요.!” 그런 황 사장님과의 밥시간은 늘 아슬아슬했다. 또 어떤 말을 할까. 그런 말에 어떻게 대처할까.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가 싫지만은 않았다.


황 사장님의 골프장 운영과 아르바이트생 관리는 나이스했다. 출근 기록부를 작성했고 이를 토대로 급여를 지급했다. 단 한 번도 급여 때문에 속상할 일이 없었다. 그야말로 나이스 가이 황이었다. 대기업 출신이란 그의 주장처럼 뭐가 달라도 달랐다. 직원들의 식사를 챙겼고 싸고 양 많은 메뉴를 선호했다. 내가 국밥을 포장해 왔을 때 그는 좋아했다. “밥 주는 거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라”는 그에 대한 화답(?)이었다.


-너 취업해서 니 선배가 대가리 박으라면 박을 수 있어?

-네?


지금은 회사에서 별일이 다 있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들깻가루가 둥둥 뜬 국물을 짭짭대던 동료 A가 말했다. “저는 절대 못 하겠는데요.” 단호한 그의 대답에 황 사장님의 눈은 A에 관한 경멸감으로 가득 찼다. 그 눈빛은 내게 향했고 ‘너도 쟤랑 똑같냐?’고 엄숙히 물었다. 젠장.! 나는 하는 수 없이 답했다. “한번 해 보죠…하하!” 그제야 황 사장님은 씩 웃었다. 회사에 들어가면 다 너보다 똑똑한 놈들밖에 없고 넌 절대 잘난 사람이 아니니 그런 모멸감은 버티라는 요지였다. 얼핏 모욕(?)같지만 한 발짝 떨어지면 괜찮은 조언이었다. 황 사장님이 몸소 얻은 지혜였다. 스크린 골프장 한편에 둘러앉은 탁자는 식탁과 면접장을 오갔다.


그 무렵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졌다. 동시에 유튜브에서는 부자들의 성공담, 부동산, 주식 등 자본 소득에 관한 정보가 각광받았다. 나는 성공이 간절했다. 스크린 골프장을 찾은 20대 또래들은 멋진 골프채와 차 키를 손에 쥐었고 나는 흡연장에서 침에 절은 꽁초를 치웠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부담스러웠고 인스타그램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즐거움은 내게 없었다. 그런 만큼 부자들의 성공담과 자본 소득은 나를 매혹했다. 책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근로소득과 부채에 허덕이는 새앙쥐 레이스를 빠져나와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타야 한다고 비명을 질렀다.


사실 스크린 골프장 개국 공신 김 실장님의 첩보에 의하면 황 사장님은 강화도에 땅이 있고 빌딩도 여럿 보유한 100억대 자산가라고 했다. 유튜브 속 부자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번은 단골이 황 사장님을 찾았다. 간식으로 손두부를 싸 왔는데 김치와 함께 먹고 싶다고 했다. 황 사장님은 욕을 한 바가지 했다. “똥도 닦아 달라고 하지!” 그리곤 카드를 주며 사다 주라고 했다.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남자 나이스 가이 황! 성공한 남자의 면모란 이런 것일까. 그리곤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비틀비틀 책상이 딸린 쪽방에 침전하듯 들어간다. 진상 고객과 업장 관리로 인한 스트레스. 큰딸과 달리 엇나가는 막내딸로 인한 분노. 부자 아빠 황 사장님의 거친 표현은 불안한 정신에서 기인했다.


-너 아버지 뭐 하시냐?


방심은 금물이다. ”회사 다니세요. 하하!” 아찔한 식사 시간을 매끄럽게 넘길 준비된 답변. 과하지도 감정 상할 일도 없는 모범 답안이 머릿속에서 팽팽 돌았다. 발화하는 순간 대답은 마음의 정리를 끝맺지 못한 심정에서 나왔다. “돌아가셨어요. 고2 때.” 그는 새앙쥐 레이스에서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이제 부자 아빠의 기분을 거스른 대가를 치러야한다. 보복 행위에 맞붙을 태세를 취했다. 동시에 더는 그와 원만하게 지낼 수 없음을 직감했다. 왜 세상 모든 아버지와 아들은 잘 지내기 힘든 것인가.! 부자 아빠는 수저를 놓았다. 그리곤 쪽방으로 들어갔다. 그게 다였다. 탁자 위에는 미적잖게 식은 국밥과 고춧가루가 묻은 수저가 남았다.


당신과 함께한 마지막 식사가 떠오른다. 66년생 경상도 남자는 처와 이혼하고 두 아들과 산다. 불혹을 넘긴 마흔다섯. 눈은 침침했고 일터에서 다치는 일이 늘었다. 몸이 힘드니 짜증도 늘었다. 주말 저녁 두 아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싸고 양 많은 메뉴 국밥. 세상만사 뭐하나 거저 주어지는 게 없다며 고래고래 소리친다. 역경이 녹아든 그의 지혜였다. 그럴수록 아들은 국밥을 빨리 비우고 싶다. 그치만 양이 많아 버겁다. 이튿날 그가 주님 곁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끝으로 아들의 기억에서 흐려진다.


-넌 열심히 살아라


스크린 골프장을 관둔 날 부자 아빠가 말했다. 반면 납골당 영정사진 속 당신은 아무 말이 없다. 당신의 아이는 함께 골프를 칠 만큼 자랐다. 올해 초에는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당신의 장례식에 왔던 그 녀석이다. 상주복을 입은 나를 두 손 모아 기도해준 그 녀석. 당신의 안부를 묻던 황 사장님을 ‘개념 없네’하고 분노한 그 녀석을 온 마음을 담아 축하했다. 잘 먹고 잘살아.! 그러면서 자꾸만 혼주석에 눈이 갔다. 가난한 아빠로 생을 마감한 당신을 마주한다. ‘슬픈가?’ 모르겠다.


요즘 나는 미운 4살처럼 울고 웃기를 반복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매일 싸우는 기분이다. 이긴 적은 없다.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주변 사람 소중히 대하기. 긍정적인 말 사용하기. 책 읽기. 뭐 하나 거저 주어지는 건 없다. 그럴수록 나는 당신과 같은 표정을 짓는다. 고래고래 소리친다. 그럴 때마다 국밥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