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격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11월 드라마 작가 과정 연수반이 시작됐다.
그렇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설파 했건만 또 이렇게 휘둘리고 말았다. 수업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던지 말던지 수업 시간은 쏜살갖이 지나갔다.
연수반 수업은 고쳐쓰기가 중심이 됐다. 작품을 쓰고 피드백을 받은 뒤 수정고를 쓰는 식이다.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를 쓴 권인찬 작가님은 오히려 고쳐쓰기가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요는 초보 작가가 자신에게 필요한 피드백과 그렇지 않은 피드백을 잘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 어떤 말을 들어야 할지 판단이 어렵다. 또 그렇게 고친다 한들 결과가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실제로 그랬다. 여러가지 수정 사항이 머릿속에서 핑핑 돌았다. 하나를 고치면 그 지점을 기준으로 앞뒤를 다 손봐야 했다. 그러니까 다시 쓰는 것보다 고쳐 쓰는 것이 배로 힘들다. 결국 프로 작가는 수정을 잘하는 것으로 결정 난다고 한다. 잘 듣고 잘 받아들여서 더 나은 작품을 선보이는 것. 이게 진정한 프로 작가의 면모다.
기초반 때 썼던 <손절 극복 로맨스>를 고쳐쓰기로 했다. 다시 수수께기를 풀어야 했다. 여러 피드백을 받았지만 스스로 자문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슬럼프에 빠진 두 남여가 왜 그렇게 된 것인지 드러내야 했다. 연애에 있어서 몹쓸짓을 당한 두 사람. 그런데 내가 기껏 생각해 작품에 적은 것들이 생각보다 약하다. 하나는 이유없이 잠수 이별 당한 것이고 하나는 궁상맞은 처지를 그만 보고 싶어서 상대가 떠난 것이다. 현실에서는 충격이 클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는 상투적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번에 풀어야 할 수수께끼는 연애에서 정말 나쁜 몹쓸짓을 만들어 내야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됐다.
쌍년 쌍놈 소리가 나올 정도의 수준으로 끌어 올린 후 강도 조절을 해보기도 했는데 잘 안됐다. 역량 부족이다. 어찌저찌 수정고를 제출했다.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계속 글 쓰고 있어?“
그러는 와중 헤어진 애인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한 3, 4년 쯤 된 것 같다.
인간관계의 유통기한이 이미 끝난 사람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알게 됐고 앞으로는 연인이든 친구든 어떤 식의 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대화 주제도 다르고 음악 취향도 다르다. 짜증내고 투정부리던 모습도 귀여웠는데 이제는 보기 싫다. 추억 속에 박제된 옛사랑일 뿐이었다. 그러나 머리와 달리 마음은 답장을 하고 있었다.
“쓰지. 드라마 쓴다.”
“내 얘기도 드라마로 써줘”
예끼! 이 양반아. 내가 당신 얘기를 왜 작품으로 쓰나. 나도 쓰고 싶은 작품이 있다고!
그때는 이 엉뚱함과 발랄함이 귀여웠다. 지금은 더 할말이 없다.
여기서 메시지는 끝났다. 이 이상 이어지는 대화는 큰 의미 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허탈했다. 이 친구와 나의 관계 속 어느 지점을 수정해 만남을 이어갈 수 없다는 점이. 오묘했다. 작품은 수정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현실은 포기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생각해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몹쓸짓을 한 게 없는데 이 지경이 됐다는 것이.
여러모로 나는 아직 멀었다. 프로 답지 않다. 귀담아 듣고 주변을 잘 살펴 더 나은 방향으로 가지 못했으니까. 노련함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노력하는 중이다. 수정은 서툴지만 계속해서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그렇게 믿는다. 그녀에게 잘 지냈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