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계 Apr 10. 2023

남자 넷이랑 갑자기 같이 살게 된 캐나다 첫날.

처음부터 이런 시련을 주시다니요

어찌 보면 출발의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질풍노도의 중학교 시절, 당시 좋아하던 친구의 첫사랑이 캐나다로 갔다. 그 친구의 눈물을 보며 '아, 나도 해외로 가면 이 친구가 나를 잊지 않겠구나!' 하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부모님께 캐나다로 보내달라 떼썼다. 어이가 없어진 부모님은 바닥에 빙글빙글 돌며 떼쓰는 나를 호되게 혼내셨고, 그 친구 대신 내가 눈물 흘린 기억이 있다.

엄청나게 많은 1년 치 짐


간절한 염원이 10년 후에 통했던 걸까. 그런 일방적인 캐나다와의 추억을 가지게 된 나는 결국 20대 초반, 캐나다로 떠나게 되었다. 이민가방과 캐리어 두 개를 끙끙거리며 끌고 도착한 캐나다 공항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작았다. 캐나다라고 다 큰 건 아니구나 생각하며 주변을 살폈다. 분명히 홈맘(home mom)의 아들이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찰나, 저 멀리서 나를 뚫어지게 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진한 눈빛의 스페인 사람! 아, 저 사람이구나. 그도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며 다가왔고,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한 뒤 그의 큰 차에 올라탔다. 차가 커서 나의 엄청난 짐들도 다 실을 수 있었다. 어색하지 않게 아들은 이것저것 말을 걸어줬고, 그 과정에서 그가 아내와 이혼 후 아들을 번갈아가며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ok. 홈맘은 하나 있는 아들과는 주말에만 왕래가 있고, 홈맘의 집에는 나와 대만인 여학생, 그리고 홈맘 이렇게 셋이서 산다고 사전에 들었었다. 여학생과 같이 살아 안전할 거라 생각한 부모님이 고르고 고른 홈스테이였다. 

그렇게 그 집에 들어간 순간, 나를 반겨주러 나온 홈맘과 그 뒤로 줄줄이 나오는 남정네들. 이게 뭔가? 싶은 생각에 당황한 내 눈빛을 봤는지 홈맘이 어색하게 웃었다. 홈맘의 아들은 총 3명, 거기에 손자까지 5명이 사는 대가족(?)이었던 것이다. 주말에만 온다는 아들은 그냥 주말에도 있는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들 친절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긴 했는데.. 그때 울린 내 전화. 딸이 캐나다에 잘 도착했는지 묻는 부모님의 전화였다.


이런저런 내 안부를 전해준 뒤, 내가 덧붙인 말.

"근데 여기 아들 세 명 있어. 손자까지 하면 네 명. 나이는 셋 다 아저씨 같아."


이때부터 나와 홈맘의 사이는 캐나다와 한국 거리만큼 멀어지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