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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계 Apr 14. 2023

달밤에 술 먹고 캐나다 분수(똥물)에 빠진 날.

충격 실화입니다..

때는 내가 다운타운에 지낼 때. 늦게까지 알바를 했던 금요일 밤이었다. 나와 친구는 지독히도 할 일 없는 한량들로, 일이 모두 끝난 후 가게에서 술을 한 잔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대화 삘이 꽂힌 우리는 다가오는 가게 마감 시간이 아쉬워 술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참고로 캐나다는 밖에서 술 마시는, 일명 노상이 금지다. 잘못하면 잡혀간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 꾀를 내었는데, 그건 바로 글라스락에 와인을 담아 마시는 것이다. 가게 와인을 매니저한테 부탁부탁해 글라스락에 담고는 신나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매니저가 담아주면서 '저 한국인들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때는 기분 좋게 취해 그런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오긴 했지만 딱히 갈 곳은 없다는 현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도착한 곳은 성당 앞 작은 공원이었다. 밤이 늦어 아무도 없는 공원에는 벤치와 작은 연못만 있을 뿐이었다. 벤치에 앉아 글라스락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며 사는 얘기, 가게 욕, 한국 스토리를 하며 분위기는 점점 더 들뜨고 있었다. 

실제 그날 마신 글라스락 화이트 와인

날은 선선하고, 대화는 재밌고, 분위기도 좋고. 여러모로 들뜬 우리는 그 자리에서 와인을 모두 다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버렸다. 

이제 문제는 화장실이다. 보통 술 많이 마시면 화장실은 필수인데, 친구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공중화장실을 찾기 힘든 캐나다에서 방광의 자유로움에 안절부절못한 친구가 어딘가에서 해결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다 살짝 심심해진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분수를 구경하고 있었다.


낮에도 매일 보는 분수인데 밤에 보니 느낌이 달랐다. 낮에는 온갖 새들이 둥둥 떠다니고 예쁘게 물이 솟아오르던 곳이었는데 밤에는 고요했다.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멍하게 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소리. 


"워!!!"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 차려보니 나는 친구와 그 분수 안이었다. 화장실 갔다가 돌아온 친구가 내 뒤에서 장난을 치려고 놀라게 했고, 놀란 나는 분수로 떨어지고, 더 놀란 내 친구는 나를 잡으려고 하다 같이 빠졌다는. 한 마디로 둘이서 달밤에 생쇼를 한 것이다.


새똥 가득한 분수 안에서 서로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지고, 그런 우리보다 더 크게 웃는 건 지나가는 노숙자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동네가 떠나가라 우리를 보며 웃었다. 아마 비웃음일 것이다.

달밤에 와인 먹다 친구랑 분수에 빠지는 일은 흔치 않은데 그런 '청춘 드라마' 같은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가끔 웃음이 난다. 물론 아무도 안 그러겠지만 따라 하지 마시라고 조용히 덧붙이고 싶다. 세상에는 냄새나는 추억 말고도 다른 추억이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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