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른다고 표현하기도 어렵다. 아니,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실은 나는 이제 말을 표현하는 것이 무척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부정확하더라도 그냥 쓴다.
내 수준에서 달리 표현할 길이 없으니.)
올 한 해 나름 여러 책들을 접했고 이해가 되든 안되든
듣고 노트하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단편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어떤 편린들은 잃어버린 나머지 신발 한 짝을 찾은 것 같은 흡족함도 있었고 반면 알고 있다 여겼던 것은 진정 알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다만 좌정관천(坐井觀天)과 같은 현재의 내가 쓰고 있는 부정확한 단어, 말, 개념들... 에서부터 조금씩 면밀하게 살펴보게 되었다는 점은 내가 나에게 괄목할만한 "차이"가 아닌가 싶다. 나름 열심히 그렸던 만화들은 이제 한 단락을 짓고 다음 시즌에는 조금씩 내가 사유한 것으로
작업을 넓혀가고 싶다는 다짐을 해본다.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내 사유의 결과물이고 싶다.
자칫 단장취의가 될 수도 있고 어설프게 아는 것을 다 아는 양 하는 것도 적절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재는 학습만화일 수밖에 없다.
한 해동안 몇 가지 시도들이 있었고 결과는 아직 더 공부하고 기다리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출판 제의도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즌 2의 첫 작업으로 어떤 소재를 할까 생각해 보다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떠올린다.
이것은 예전에 손으로 재미 삼아 그렸던 쿠키에 관련된 나의 단상인데 디지털 작업으로 옮기려고 하는 지금 시점에 보니 이 만화가 <차이와 반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렸었는데 말이다.
이 만화에 대한 나의 관점이 달라진 것이다.
이 만화를 보면서 내가 올 한 해도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고 조금씩 다르게 반복하고 있었고
지금도 조금씩 다르게 차이의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에 흐뭇한 마음이 든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자화상을 젊은 시절부터 노년기까지 많이 남겼다.
그의 자화상에는 슬프고 우울한 모습까지 그대로 드러난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프란스 할스의 그림도 매우 훌륭하고 기술은 나무랄 데 없으나 할스의 그림이 스냅사진 같다면 렘브란트의 그림은 살아 숨 쉬는 호흡이 들어간 그림(정확히 이런 표현은 아니지만 이런 뉘앙스의)이라고 곰브리치는 표현을 했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듯 렘브란트 역시도 노년까지 고생을 많이 했고 그의 자화상에는 그런 애환들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기에 이런 표현을 했으리라.
단원 김홍도 또한 어떠했는가.
당시에는 냉장고도 없어서 동빙고동 서빙고동이라 불리는 요즈음의 용산 근처 그 지역에서 얼음이 한참 딱딱할 자정부터 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얼음을 일정한 벽돌 크기로 잘라 임금의 음식을 보존하기 위한 냉장고용으로 만드는
일을 감독했다. 그리고 쉬지도 못하고 성질 급한 정조의 명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
녹봉도 없이...
그럼에도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그 당시의 사람들의 표정과 옷자락에 생기가 묻어난다.
사람의 사는 모습을 화가가 어떤 시선으로 보았는지가 느껴지는 것이다.
녹봉도 없이 고된 노역을 하고 남은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는 그의 의지가 단순히 멋진 명작을 만들기 위해서만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명작을 남기고 후대에 알려질 대화가가 되기 위해서였다면 고달프기만 해서 진즉 그만뒀을 것 같다. 체력도 안되었을 것이고.
새벽에 얼음 캐는 일을 하고 기침을 하면서 어떻게 명작을 그리겠는가. 봉급도 없이 말이다.
그가 그린 이유는 그런 위대한 목적이라기보다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몰입을 할 수 있었고 동시에 관리들의 횡포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동병상련인 처지를 그림으로나마 울분을 풀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이 원동력이지 멋진 그림으로 세상을 뒤흔들고자 하는 동기로 그 많은 작품들을 그렸다고 보기엔 그의 생활이
몹시 고달프고 힘들어 보인다. 예술가들은 힘듦만 있는 게 아니고 그것을 상쇄하는 기쁨이 공존한다.
작업을 할 때가 그런 것이다. 내게는 이것이 더 큰 작업의 원동력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도 그럴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진정으로 어떤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가를 많이 자문했던 한 해였다.그리고 나만의 카드를 쥐었다. 다시 시작하는 임인년(壬寅年). 올해는 호랑이를 그려볼까.
고양잇과 동물을 몹시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호랑이는 참으로 멋있는 동물이다.
두툼한 앞발, 엄청나게 큰 두상. 부릉거리는 입가의 큰 숨소리. 호랑이의 두상을 자세히 보라. 기이하다.
사실 세렝게티의 처연하게 달리는 치타를 무척 좋아하지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는 우리 전래 동화 속
호랑이도 구수한 경외감이 있는 것이다.
치타와 호랑이의 만남. 멋지다!
서기 2022년과 임인년의 만남.
만화와 파인 아트의 만남. 나와 너의 만남.
그래, 어디선가 읽은 글귀처럼 진실은 경계선에 있는지도.
어떤 삶을 살건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차이"가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오미크론까지 함께하는 시대지만 그럼에도 모두 파이팅이라고 외칠 수 있는 건 이 까닭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