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포괄하는 방대한 주제다. 우리는 때론 살고 때론 죽는 존재가 아닌 죽거나 사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삶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우주 속에 유일한 존재자가 나라고 가정해 본다면, 나는 과연 삶과 관련한 자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분석할 때, 온전히 독립적이며 단독적으로 삶의 구성요소를 다루는 시도가 헛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삶은 여러 관계들의 총체이지 온전히 원자화된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전체주의를 또는 집단주의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군가 당신의 인생이 순전히 남들에 의해 규정되고 또 그래야만 온당히 존재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삶이 정말 삶이겠는가 하는 상식적인 반론에 부딪힌다.
이렇듯 삶을 정의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지만, 우리는 이런 난해한 문제를 조금 비껴가서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로 주제를 조금이나마 축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삶이 어떠하든 간에 우리는 어떤 범위 내에서만큼은 우리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삶의 태도를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다. 그렇게 선택적으로 취해진 관점에서는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가 때로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 사람을 제약하고 훼손하며 원치 않는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인생은 자기 착취적으로 계발되어야 하고 이것은 누구에게든 권할만한 자세가 되는가? 삶은 책임과 자기완성 없이 온전히 향유해야 할 대상이 되는가? 우리는 극단적인 이 두 사례를 통해서 범위를 다시 한번 좁혀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삶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는 현대에 있어 어떤 풍토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한때 욜로나 플렉스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기가 지나 지금은 갓생이라는 말이 사회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대립적인 두 유형들, 욜로와 갓생은 삶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의 훌륭한 예시가 된다. 전자가 삶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충족시키는데 주안점을 두는 반면, 후자는 근면함을 염두에 둔다. 전자가 당장 하루만 보고 사는 삶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자발적 노예상태이다. 두 유형 모두 삶에 있어 각각의 개별적 진실을 포함하고 있지만 어떤 것도 쉽사리 만족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그렇다면 어떤 사실 하나를 이로부터 유추해 낼 수 있는데, 우리는 부분적으로 충족되는 삶을 통해 완전한 행복을 바란다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애를 쓰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지만 그런 것이 삶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어떤 선택에 뒤따르는 불행을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에 대해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이런 논쟁 역시 잠깐 비껴가기로 하자. 왜냐하면 주관적인 척도로서 행복은 일시적으로 충족되는 것이며 때론 행복하고 때론 불행한 것이 일반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삶과 아주 밀접한 주제이나 이번 장에서는 더 논의를 진전하지는 않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이 두 유형은 대립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우연하게 조화되기도 한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예로는 타고난 성향이 근면하여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 자기 충족적인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경우는 지극히 우연적인 일이지만 가능은 하다는 점에서 이 두 유형을 대립항으로 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다루었던 내용을 정리해 본다면, 삶 자체를 쉽사리 개인주의적인지 관계지향적인지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고, 그래서 유행하는 현대의 두 유형으로 나누어 논의를 했으며 이들이 각각 가지는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통해 추상적인 행복을 누린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때로는 이 둘은 조화가 되기도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순전히 우연적인 일로서 우리의 노력과 무관하다는 점 역시 밝혔다. 우리는 우리 인생이 정말로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진지하게 삶에 몰두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도 잘 안다. 우리가 논의했던 태도들은 삶 그 자체가 소중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했으며 그 길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어떤 귀결로 나아가든, 다시 말해 어떤 태도를 견지하든 간에 우리는 주어진 대로 사는 존재가 아닌 성찰하는 존재로서 세상에 홀로 섰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